“발달지연 검사를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엽편소설 - 집중력이 남다른 아이, 훈이 1/2

by 산들바람


삐이이이. 스피커의 파열음이 고막을 찌른다. “아. 아아. 관리사무소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울려대는 안내방송에 스피커 전선을 끊어 놓고 싶다. “훈아~ 시금치. 시금치 먹자.” 계란말이를 케첩에 찍느라 쳐다보지도 않는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편식하는지 모르겠어.” 애맨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신문에 얼굴을 파묻고 제 밥만 먹는 게 꼴 보기 싫었다. “난 편식 안 했어. 입이 짧은 건 당신이지.” 신문에서 눈을 뗀 남편이 오른쪽 눈만 깜빡이며 말했다. 쌍까풀이 없고 꼬리가 긴 눈에 웃는 주름이 잡혔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나갈 채비를 하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동안 훈이는 제자리에서만 놀았다. 토마스 기차를 손에 쥐면 기본이 한 시간이다. “훈아, 훈아.” 불러도 소용없다. 토마스 기차와 어디로 그렇게 여행 다니는지 엄마를 잊은 지 오래다. “뽀로로하고 어야 가자.” 뽀로로를 훈이 코앞에 갔다 댔다. “뽀로. 뽀로.” 토마스는 금세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외출하는 걸 싫어하는 훈이를 밖으로 불러내는 마법과 같은 뽀로로는 훈이가 세 살이 되도록 물고 빨아 오른쪽 눈알이 떨어져 나간 인형이다.


“띵동.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니 투표함이 보였다. 현관 앞이 투표소가 됐다. 파란 플라스틱 탁자 위에 선거인 명부와 선거 용지가 놓여있었다. 비상계단 쪽에는 기표소가 서 있었다. “동대표 선거하고 가세요.” 곱슬머리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선거참관인이 눈을 마주치면 말을 건넸다. 자율방범대원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훈이와 놀이터를 갈 때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아는 체를 해서 꽤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가 보이면 일부러 돌아갔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단답식으로 말하고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저씨의 이름이 뭔지 몇 호에 사는지 모른다. 동대표로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뭐 하는지도 관심 없다. 나는 눈길을 피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바쁜 척 자리를 피했다.


아파트에서 5분 거리에 진소아과가 있었다. 훈이를 안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가 하늘색 가운을 입고 앉아 있었다. “훈아 안녕?” 안경 너머로 훈이를 살피던 의사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훈이는 진료실에 의자에 앉자마자 책상 위에 있는 연필통에 꽂혔다. 플러스펜을 뺏다 넣기를 반복하다가 기어이 연필통을 넘어뜨렸다. 흩어진 펜들을 손으로 내 젓기 전에 가방에서 주의를 끌 만한 카드지갑, 책, 장난감을 뒤적였다. 빠르게 스마트폰을 쥐여줬다. 정기검진 때문에 오셨네요. 네, 선생님. 유아원 입학에 필요해요. 의사는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해 나갔다. 예방접종은 제때 다 했는지, 최근에 아픈 데는 없었지. 여러 가지를 물으며 이곳저곳을 들여다봤다. 의사가 귓속을 들여다보는 장치를 갔다가 대자 훈이가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의사는 검지로 이마를 두어 번 문지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발달지연 검사를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검사를 받아봐야겠지만 아이가 자폐적인 증상을 보이는군요.”

“말아톤... 그 자폐증이요?”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아이가 낯을 가려서,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거에요.”


침착하려고 애썼다. 의사는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특정 소리나 냄새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나요? 몸이 자주 아프진 않나요? 음식에 까다롭게 굴지 않나요? 나는 차가운 얼굴로 아이라면 다 그렇다고 조목조목 대꾸했다. 냉정 하려 할수록 등에서 땀이 났다. 훈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핸드폰 게임에 빠져있었다.


“훈아, 스티커 줄까?”


의사는 스티커를 내밀고 기다렸다. 반응이 없자 눈앞에 아른거리게 이리저리 흔들었다. “뭔가에 집중하면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써요.” 엄마인 나한테도 그렇다고 주장했지만, 목소리 힘은 점점 빠지고 있었다. 의사는 나보다 더 냉정했고 진료실 하얀 벽이 허공에 흩어진 말들을 다 삼키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이지 않은가.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다.


“글도 알아요. 18개월부터 글씨도 썼다구요.”

“저 나이 애들은 보통 이렇게 반응하지 않아요. 엄마가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지요?”


“... ...”


타닥타닥 의사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방망이질하듯 심장을 두드렸다.


“고집이 센 거예요. 저도 어려서 그랬대요.”


훈이를 껴안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나요?”



“... ...”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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