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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의 서재 Jun 07. 2024

독서모임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2장.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feat. 태도에 관해)

글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고자 소제목을 적었지만,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독서모임을 할 때 '절대적으로' 나쁜 책은 없다. 책을 만드는 건 사람이듯 책을 좋게, 나쁘게 느끼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독서모임에서 발표하기 좋은 책, 나쁜 책이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이걸 나눌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주장이다. 개인의 경험과 독서모임의 분위기에 따라 최고의 책이 최악의 책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좋은 책, 나쁜 책이라는 말은 책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 발표하기 어려운 책, 쉬운 책이라고 이야기해 보겠다.

(??: 검은 소가 일을 잘하오 누렁소가 일을 잘하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책, 첫 번째는 바로 자기 계발서이다. 자기 계발을 사랑하시는 독자들이여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나름 자기 계발서를 주기적으로 읽는 애독자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 계발서는 대체로 독서모임에서 '발표'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이제 죽창을 잠시 내려놓고 내 주장을 잠시 들어 보도도록 하자.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자기 계발서들의 큰 틀은 대략 비슷하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제어하여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런 책이 독서모임에서 발표하기 힘든 점은 듣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들이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에 청자들의 좋은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이를테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내용은 챗GPT가 해주는 인간관계의 팁은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자기 계발서는 독서모임에서 발표해서는 안 되는 걸까.


물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기 계발서를 성공적으로 발표하기 위한 방법이 하나 있다면, 본인이 직접 행한 내용을 스토리를 담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의 본질은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결국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는 책 속의 지식으로만 존재해서는 의미가 없다. 이 방법이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직접 실천해야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만큼이나 사람의 성향도 다른데 책의 비법이 나에게 찰떡처럼 맞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 아닐까. 자기 계발서가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되기 위해선 책의 내용들을 실천하고 스토리를 들려주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서를 들고 와 발표를 하지만 그중 직접 실천한 것을 발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나조차도 그렇다. 직접 실천하고 깨달은걸 말로 표현하기까지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유로 자기 계발서가 독서모임에서 발표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어려운 책은 너무 지엽적인 내용의 책이다. 결국 이문제도 자기 계발서와 동일한 문제점이 있다. 공감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문제다. 사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 계발서는 약과에 속한다. 만약 모임에서 청자가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만큼 시기적절한 책도 없다. 책이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하기 적절하냐 아니냐는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2년 전쯤이었다. 한동안 쉬었던 주짓수를 다시 하기 위해 관련된 책을 찾고 있었다. 직접 하고 있기도 했지만 뭔가 색다르게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책을 선택했다. 한국에는 도서가 많이 없어 아마존에서 적절한 책을 찾다가 기술에 관한 책 보다 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책을 찾다 보니 PAULO GUILLOBEL의 <Mastering the 21 immutable principles of bizilian jiu-jitsu>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설마 발표했느냐고. 그렇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세세한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주짓수의 공격, 방어의 철학을 담았다는 면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다.


모임 당일. 나도 진땀을 흘렸고 듣는 사람도 진땀을 흘렸다. 듣는 회원들이 눈빛 초점이 내가 아닌 저기 어딘가 공허를 향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실패를 직감했다. (죄송했습니다 여러분) 주짓수라는 무술의 시작과 현재까지 한국에 전파되기까지의 과정. 저자의 특이한 이력(파울로 길로벨은 검사이면서 주짓수 검은띠이다) 등등을 설명했지만 청자들의 공허한 눈빛을 막지 못했다. 물론 이런 책도 일회성 이벤트로 괜찮을 수 있다. 취미의 세계는 넓으니까. 뜨개질 책이 발표될 수도, 유도에 대한 책이 발표될 수 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발표했던 책은 주짓수라는 무술에 대한 책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었다. 이런 책은 일반 사람에게 공감과 지식으로써의 유용함을 얻기도 힘든 책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직접 말을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책을 발표할 때 좋은 기준을 세우게 해 주었다.


이와는 반대로 발표하기 쉬운 책은 어떤 책이 있을까.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책동사에는 자유독서모임에서 '오늘의 책'을 뽑는 제도가 있다. 책을 잘 발표했거나 읽고 싶은 책을 뽑는 것이다. 책을 발표를 할 때 최소한의 동기부여가 되는 제도인데, '오늘의 책'에 잘 뽑히는 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좋은 책이 '오늘의 책'에 많이 뽑힐 확률이 높다. <위대한 개츠비>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같은 책이 그렇다. 짧지만 안의 내용이 독자에게 많은 울림을 주기 때문에 많이 발표되어도 꾸준히 '오늘의 책'에 뽑히는 책들이다.


그것보다 더 '오늘의 책'에 뽑히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본인이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느냐 이다. 좋은 책을 읽은 사람의 마음은 모두 똑같을 것이다. 이 기쁨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책을 다른 사람도 읽어서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런 즐거움은 듣는 사람도 느끼기 마련이다. 좋은 책을 읽은 즐거움과 기쁨은 눈을 통해 흘러나온다. 반짝반짝한 즐거움은 청자들도 기분 좋게 만드는 에너지가 담겨있다.


어떤 책을 가지고 모임에 가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회원 중에는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소개해주고 싶은 책만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책의 소개를 듣는 모임은 발표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즐거운 모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즐거운 모임이 켜켜이 쌓여 그 독서모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길게 보면 독서모임이란 천천히 서로 닮아가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을 비슷한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건 수년에 걸친 오랜 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서모임의 책에 관해 이야기한 김에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앞서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만 발표하는 회원처럼 모든 사람이 이렇게 발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 나한테 재미없었던 책을 발표할 때도 있다. 독서모임을 우선 신청을 했고 어떻게든 책을 소개해야 될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 모임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결정짓는 건 책의 훌륭함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모임을 운영하다 보면 힘든 점은 최악의 책을 읽었는데 그냥 최악이었고 이 책이 마음에 안 든다는 태도로만 일관하는 회원이 있을 때이다. 나에게 이 책이 안 맞을 수 있고 그 경험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독서모임은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이런 시간에 내 취향에 안 맞고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시간은 읽은 사람의 최악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독서모임에 나온 회원이라면, 책의 내용 설명이나 요약, 그리고 내가 안 좋게 느낀 이유를 납득가능하게끔 설명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운영진이면서 책을 소개하고 듣는 회원이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많아지면 모임을 나가기 싫어질 때도 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모임을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밌고 다음에 또 가고 싶어 지는 게 독서모임이다. 모임을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 덕에 지금까지 모임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내 삶에서 독서모임이 너무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고 느껴 겁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것을. 그래. 내가 선택한 독서모임,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로 마음먹으며 여기서 글을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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