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
잔뜩 흐려진 회색 하늘에 번개가 번쩍였다.
유리창이 깨질 듯 들썩였고
양철 지붕뚜껑이 길가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판장에는 이미 바닷물이 흘러 넘쳐 아수라장이 되었다.
육지로 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커다란 크레인이 와 있었지만 속도가 더뎠다.
아빠는 태풍의 한 가운데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배를 지키고 서 있었다.
호야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티비에는 태풍 이동 경로가 정신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잠시 후면 우리 섬으로 더 큰 태풍이 덮쳐 올 것 같았다.
창문이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짜야는 받아쓰기 숙제를 하다 말고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그간 미뤄두었던 설거지와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개안타. 집 안 날라간다.”
그러나 엄마의 얼굴도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야는 두 무릎을 모은 채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는 언제 오노? 아직 멀었나?”
“인제 곧 오시겠지.”
섬에는 일 년에 열 번도 넘게 거센 태풍이 몰아쳤다.
그 중 한 두 번은 육지로 배를 끌어 올려야 했는데
작년에, 진양호 아저씨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다.
아저씨는 보상도 못 받고 술만 마시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엄마는 진양호 아저씨가 육지로 이사 갔다고만 말했다.
'좋은 아저씨였는데, 어디로 이사 갔뿐노?'
호야의 머릿속엔 진양호 아저씨의 슬픈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세탁기에서 탈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소쿠리에 빨래를 가득 담아 뒷방으로 갔다.
호야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답답했다.
아빠가 태풍에 날아갈까 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 화장실 간대이.”
호야는 짜야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한발 내딛는 순간 호야 몸이 휘청거렸다.
마치 강속구가 온몸을 강타하는 것 같았다.
집 앞 공터에는 '심슨 머리 모양'을 한 부러진 나무가 굴러 다니고 있었다.
호야는 지붕 뚜껑이 날아 올까봐 건물에 바짝 달라 붙어 옆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겨우 뱃머리에 도착하자
커다란 크레인이 바다에서 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바로
‘호야호’였다.
호야는 몰래 크레인 옆으로 다가갔다.
아빠와 아저씨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어이.어이. 하며 소리 쳤다.
바다에서 천천히 들려진 배 아래에는
홍합과 따개비, 미역줄기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날이 좋으면 엄마와 아빠는 그것들을 칼로 긁어냈다.
그래야 배가 가뿐히 바다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호야호가 육지에 닿기 전,
아저씨들은 바닥에 커다란 강목으로 받침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무거운지 강목 하나에 어른 네 명이 달라붙어 옮겨야 할 정도였다.
받침대에 배가 잘 앉지 않으면 큰일이기에
아빠는 크레인 기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우쪽, 아니 약간 자쪽으로. 이제 내라라. 오라이 오라이!”
그때 커다란 바람이 불었다.
호야호가 공중에서 철컹하며 흔들렸다.
배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아빠는 비키지 않았다.
빗물은 거세게 아빠의 우비로 휘몰아쳤다.
모자가 벗겨지고 검정 우비가 찢어졌다.
아빠는 강목보다 더 무겁게 우뚝 서서 크레인에 손짓을 했다.
호야는 혹시라도 배가 떨어질까 봐,
그래서 아빠가 다칠까 봐 너무 겁이 났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호야의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그때 다시 강풍이 휘몰아쳤고
호야호가 아빠 머리 위에서 또 한 번 철컹거렸다.
호야는 그대로 뛰어가 아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아빠 비키라. 배 떨어진다. 절로 가자.”
아빠는 놀란 얼굴로 호야를 쳐다봤다.
“니 우예 여기까지 왔노? 절로 가라. 다친다.”
“아빠 안가면 내도 안 비킨다. 아빠 죽으면 안 된다. 내캉 가자.”
“임마야, 아빠가 와 죽노. 이제 다했다. 저 가 있어라.”
호야는 대답 대신 아빠의 허리를 더 세게 꽉 붙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대성호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호야를 잡아떼 내었다.
“세상 효자가 다 울고 가겠네.”
“이 손 노소. 우리 아빠 데리고 갈끼라요.”
“알았다. 임마 참 고집시네.”
대성호 아저씨의 아귀힘은 대단했다.
하긴, 10키로나 되는 방어를 한 손으로 잡아 올린 사람이니까.
호야는 힘도 못 쓰고 목 뒷덜미를 붙잡혀 질질 끌려 나왔다.
그 사이 호야호는 받침대에 아슬아슬하게 내려왔다.
사람들이 다시 모여 배에 묶인 밧줄과 사슬을 풀어냈다.
그리고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 다른 배에 줄을 묶기 시작했다.
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빠는 배 상태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호야는 그제야 대성호 아저씨 손에서 풀려나 아빠 곁으로 머뭇머뭇 다가갔다.
아빠는 호야를 보고 활짝 웃었다.
호야는 배에 붙어 있는 홍합 찌꺼기를 괜히 만지작 거렸다.
“우리 호야 오늘 단디 고생했네. 저녁에 통닭 사주까?”
호야는 울음을 참으며 꾸역꾸역 말했다.
“...내 고생 안했다. 근데... 통닭은 묵고 싶다.”
“그라자. 좋다!”
아빠는 껄껄 웃었다.
아빠의 웃는 얼굴을 보니, 호야의 마음 속에 있던 걱정이 다 날아가는 듯했다.
'아빠는 슈퍼맨이데이. 오늘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라믄 내는 슈퍼맨 아들이네. ㅋㅋ'
그때 저 멀리서 한눈에 봐도 화가 잔뜩 난 엄마 얼굴이 보였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엄마.
호야는 얼른 아빠 뒤에 숨었다.
왠지 집에 가면
더 큰 태풍이 호야의 종아리에 덮쳐올 것 같았다.
‘잠바라도 입고 나올 걸...’
호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빠 우비 속으로 숨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