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비밀

by 섬아이

“형아, 형아~”


멀리서 다급한 짜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스듬히 장롱에 기대 앉아 티비를 보던 호야가 몸을 일으켰다.


“띠기 할배 왔다.”


호야는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운동화를 구겨 신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띠기 할배는 일 년 중 가을에만 와서 띠기를 팔았다.

그러나 9월이 지나도 오지 않는 할배를

호야와 짜야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바람과 함께 솔솔 불어오는 띠기 냄새는

머릿속을 달콤한 별들로 가득 채웠다.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호야는

띠기 할배 트럭 뒤에 길게 늘어선 아이들을 보고는 힘이 빠졌다.


아빠의 비밀.bmp


“시간 억수로 걸리겠네. 도대체 몇 명이고?”


짜야는 손가락을 한 개씩 접었다 피면서 숫자를 셌다.


“열세 명.”


“한 사람에 오 분씩이면 얼마고?”


“음...5시간?”


“니는 계산도 못하노? 3시간이다.”


호야는 한심한 눈으로 짜야를 째려본 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호야 친구 진수는 이미 한 개를 다 먹고

두 개째 띠기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집중해 손가락에 침을 묻혀

튀어나온 별모양 가장자리를 녹이고 있었다.


“진수 니, 그거 성공해도 맨 뒤에 가서 줄 서야 한다.”


“아이다. 다른 아들도 앞에 가서 보너스 받아온다.”


“그라믄 나는 언제 묵노?”


“말 시키지 마라. 내 또 망친대이.”


이러다가는 해질 때까지 호야 차례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호야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괜히 애꿎은 신발만 던졌다 주워오곤 했다.


그때 트럭 앞 삼거리 다방에서 아줌마가 나왔다.

분홍색 보자기에 커피를 싸 들고 배달을 가는 중인 것 같았다.


‘혹시...’


호야는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은 아줌마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아줌마는 어판장으로 내려가 대성호 배 아저씨 앞에 멈췄다.

대성호 아저씨 그리고 아빠가 모여들었다.


“내 잠깐 갔다 오께. 자리 잘 지키고 있어라.”


호야는 짜야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후다닥 어판장으로 내려갔다.


아줌마는 보자기를 펼쳐서 하얀 컵에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어판장에 달콤한 커피 냄새가 진동했다.


“어이, 커피 귀신 왔나?”


대성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아는체를 했다.

아빠는 귀찮은 듯 호야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잔을 입에 가져갔다.


“호야도 한잔 해야지. 노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노.”


대성호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호야를 놀렸다.

아줌마도 씩 웃으며 컵 하나를 더 빼들었다.


아빠의비밀2.bmp


“우리 작은 사장님은 커피 하나, 프림 두 개, 설탕 세 개 맞지요?”


“예.”


호야는 말보다 빠른 아줌마의 손놀림에 놀라며 대답했다.


“알라가 무슨 커피고? 커피 마이 묵으면 머리 나빠진다.”


아빠가 못마땅한 듯 핀잔을 줬다.


“호야호 선장님 주신 광어, 억수로 크대예. 이모야들하고 실컷 잘 먹었니더.

그래가 오늘 커피는 공짜다, 공짜.”


“이야, 호야~ 오늘 너거 아빠 덕분에 커피 실컷 마시겠네.”


대성호 아저씨는 또 껄껄 웃었다.


뜨끈하고 달달한 커피가 목안에 들어가자

온몸이 커피향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띠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맛이었다.

호야는 왠지 멋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듯 윙하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먹었다던 광어가...

왠지 그 광어일 것 같다는 생각이 설핏 스친 것이다.


호야는 무심한 표정으로 아빠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아빠는 새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바로 어제

오랜만에 커다란 광어가 잡혔다며 엄마가 좋아했었다.

회도 먹고 살집 도톰한 매운탕도 끓여 먹을 거라며

엄마는 호야 손에 있는 과자 봉지도 뺐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빠 손에는 광어는커녕

흔한 우럭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광어 그거 줍다가 미끄러져가 바다에 도로 빠졌다.”


“뭔 소리고? 그라믄 뜰채로 잡아 올려야지.”


“앞바다에 기름이 많아서 더러버 못 먹는다.”


“아들 줄라꼬 잔뜩 기대 했디만은, 아까버가 우야노?”


엄마는 울상이 되어

미나리와 무가 든 소쿠리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밥상엔 달랑 김치와 김만 올려졌다.

아빠는 맨밥에 김치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아깝다. 아까버라.”

하며 속상해했다.


그러나 아빠는 광어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호야는 왠지 그런 아빠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오호!

호야는 이제 광어가 어디로 빠졌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호야는 씩 웃으며

다시 한번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당황한 얼굴로

남은 커피를 호야 컵에 줄줄줄 따라주었다.


호야는 왠지 아빠보다 더 큰 사장님이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호야!”


“형아!”


진수와 짜야가 멀리서 손짓을 하며 호야를 불렀다.


호야는 아빠에게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아빠는 띠기 할배 트럭을 힐끔 보고는 짜야 손에 천원을 얹어주었다.


‘아싸! 이거면 다섯 개다. 역시 나는 똑똑해.'


호야는 휘파람을 불며 트럭으로 힘껏 달려갔다. (*)

이전 07화호야의 아르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