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아르바이트

오징어 기술자 김호야!

by 섬아이

“형아, 라면 먹고 싶다.”


“라면? 니 돈 있나?”


짜야는 호야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손바닥 위에는 달랑 십 원짜리 세 개가 있었다.


“이걸로 우예 사노. 나도 돈 없는데...”


그 순간 호야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오후 3시. 엄마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호야는 등 긁개로 장롱 밑을 쓸어 보았다.

먼지 뭉치와 성냥개비, 연필 한 자루가 굴러 나왔다.


“에이. 아무것도 없네...”


호야는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자 며칠 전 하교 길에 만난 대성호 아줌마가 떠올랐다.


“호야 니 시간 될 때 올래? 한 꼬지에 20원 주께.”


‘한 꼬지에 20원...?’


호야는 몸을 벌떡 일으켜 운동화를 신었다.

짜야는 영문도 모른 채 엉겁결에 호야를 따라 나섰다.


호야 집에서 또랑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대성호 아줌마 집이 나왔다.


“아줌마요, 내 왔니더.”


오징어 덕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대성호 아줌마가

반가운 듯 손짓을 했다.


호야와 짜야는 햇볕에 꾸덕하게 마르고 있는 오징어 사이를 지나

대성호 아줌마에게 갔다.


“오징어 기술자 오셨네. 니 오늘 몇 꼬지 할래?”


“다섯 꼬지만 하께요.”


“하이고, 꼴랑 백원 벌라고 왔나?”


“오늘 숙제가 많아가요. 내일 더 하께요.”


“그라자. 이쪽서부터 저쪽까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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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덕장에 쫙 깔린 수백 꼬지의 오징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배가 고팠기에 욕심을 내면 안 되었다.

안성탕면 한 봉지에 130원.

몇 번이나 계산하며 내린 결론이 다섯 꼬지였다.


“시작한대이!”


호야는 짜야에게 비장한 얼굴로 말한 뒤

한 뭉치로 붙어 있는 오징어 다리를 하나씩 떼기 시작했다.


짜야도 질 새라 뒷발을 곧추 세워 겨우 한 마리를 끝내더니

장독 위에 있던 큰 돌을 낑낑거리며 갖고 와

그 위에서 오징어 다리를 떼기 시작했다.


한 꼬지에 스무 마리씩 걸린 오징어는

온몸을 힘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몸이 제법 두꺼운 것은 아빠처럼 당당해 보였지만

얇은 것은 마치 쉬 마려운 짜야 같아 보였다.


호야는 그런 오징어 다리를 하나씩 떼어주고 귀도 쫙쫙 펴줬다.

호야의 손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갈수록

오징어는 다시, 날쌘 귀와 열개의 다리를 가진 튼튼한 바다의 왕자가 되었다.


오후 3시의 햇살은 뜨거웠다.

아직 세 꼬지나 남았는데 벌써 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호야의 손은 초원 한가운데에서 피리를 부는 소년의 손가락처럼

빠르고 자유로웠다.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호야가 어른 세 몫 한 대이.”

오징어철만 되면, 동네 아줌마들이 호야를 찾는 이유였다.


짜야도 한 마리씩 할 때마다 돌을 옮겨 꼼꼼이 다리를 뗐다.

그러나 귀까지는 손이 닿지 않아 그건 호야 몫이었다.


그때 옆집 원양호 아줌마가 호야를 보며 볼멘 소리를 했다.


“호야 니 대성호만 해줄끼가? 우리 집은 언제 해주노?”


“아, 요즘에 숙제가 억수로 많아서요. 다음에요.”


“이 동네 오징어 기술자가 한집만 해주면 되나? 그러면 아줌마 삐진대이.”


호야는 멋쩍어 땀을 닦는 척했다.

원양호 아줌마는 씩 웃으며 호야에게 손짓을 했다.

호야는 머뭇머뭇 아줌마에게로 갔다.


“대성호 20원이제? 내는 한꼬지에 30원 주께. 어떻노?”


호야는 가만히 생각하는 척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이다. 알제?”


“아줌마도요. 우리 엄마가 숙제도 안 하고 오징어 다리 띠러 다닌다고 혼 냈니더.”


원양호 아줌마는 눈을 찡긋했다.


그때 대성호 아줌마가 마실 것을 갖고 왔다.

유리병에 든 델몬트 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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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호 아줌마는

호야가 한꼬지를 하든 두꼬지를 하든 항상 델몬트 쥬스를 갖다줬다.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지 바닷 속에 들어가 마시는 기분이었다.

짜야는 눈치도 없이 쥬스를 두 잔이나 비웠다.

그런 짜야를 보며 호야는 한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인제 델몬트 쥬스도 빠빠이네.’


대성호 아줌마는 호야의 속도 모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호야는 주머니속의 백원을 만지작거리며

기울어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서부 영화에 나오는 멋진 남자가 된 것 같았다.

의리냐 사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징어 기술자 김호야. 탕야 탕야!


호야의 머릿속엔

분식집에 파는 떡볶이와 깐돌이, 테이프 사탕이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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