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 너거 아빠 또 시작이가?”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가고도 파도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호야는 검정 우산을 접으며 양조장 안으로 들어갔다.
양조장에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다.
아저씨는 주전자 한가득 막걸리를 부어주며 호야에게 말했다.
“적당히 마시라 해라. 다음에는 안준다 해라이.”
“예.”
호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한손엔 우산을, 한손엔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뒤뚱뒤뚱 집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을 열자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징어 덕장에 갔던 엄마가 그 사이 온 것이다.
호야는 슬며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용히 주전자를 내려놨다.
“아한테 또 막걸리 시켰나? 잘한다, 잘해. 아빠한테 뭐 배우겠노?”
엄마는 태풍주의보를 가장 싫어했다.
그건 호야와 짜야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주의보와 함께 술을 시작해 주의보가 끝날 때 까지 마셨다.
그건 바로 우리 집에도 태풍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다 노래를 부르고, 울기도 하고
친구한테 전화를 해 그간 서운한 소리도 했다.
그러면 간혹 친구가 찾아와 새벽까지 시끄럽게 술을 마셨고
호야와 짜야, 엄마는 작은 방에 모여 함께 잠을 잤다.
밥상엔 달랑 신김치와 막걸리 뿐이었다.
아빠가 수화기를 들어 혀꼬인 소리로 말했다.
“병철이가? 니 우리 집에 잠깐 온나. 막걸리 한잔 해야지.”
아빠는 껄껄 웃었다.
엄마는 수화기를 낚아채 전화를 끊어 버렸다.
“맨날 주의보마다 이게 뭔 짓이고? 알라들 보기 안 부끄럽나?
또 누구 불러서 새벽까지 술 마실라꼬?”
“여편네가 간땡이가 부었나?”
호야는 얼른 작은방으로 피신했다.
그곳엔 짜야도 있었다.
짜야는 엊그제 슈퍼에서 산 작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훌쩍 거리고 있었다.
티비도 볼 수 없고, 비가 와서 놀러갈 수도 없었다.
호야는 심란한 마음에 공책을 펴고 엎드렸다.
연필에 힘을 세게 주니 연필심이 픽하고 부러졌다.
호야는 연필깎이에 연필을 집어넣고 날카롭게 깎은 다음
또 다시 픽하고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그것도 지겨워지자 이불에 벌렁 드러누웠다.
머리에 빗물도 다 마르지 않은 채였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호야는 금세 스르륵 잠이 들어 버렸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하얀 연기 속에 용왕님이 나타났다.
지팡이를 짚은 용왕님이 호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를 살리고 싶거든 용바위까지 10번 뛰어 갔다 오너라.”
“예? 용바위를요? 10번이나요?”
호야는 고민에 빠졌다.
엄마 아빠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이것 밖에 없다면...
호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못할 것 같은데요. 용바위가 얼마나 높은데요.”
그러자 용왕님이 수염을 쓸어 내리며 호통쳤다.
“엄마 아빠가 죽어도 좋으냐? 당장 뛰어 갔다 오너라!”
호야는 말했다.
“예...근데 암만 생각해도 못 뛰어갈 것 같은데요. 걸어가면 안 될까요?”
“알았다. 대신 오늘 안에 10번을 갔다 와야 한다.”
“예.”
호야는 용바위를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다다랐을 때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왔다.
‘이렇게 열 번을 우예 갔다 오노. 근데 내가 안가면 엄마 아빠는 우예 되노?’
호야는 너무 힘들고 막막한 마음에 그만 눈물이 났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용왕님! 내 도저히 못 갈 것 같은데요. 5번으로 줄여주소. 예?”
용왕님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호야는 또 하늘에다 대고 소리쳤다.
“용왕님! 빨리 대답안하면 이 산에다 오줌 쌌뿝니더. 예?”
그래도 용왕님은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호야에게 커다란 벌을 주려고 준비 중인 것 같았다.
호야는 뿌리가 다 드러난 커다란 나무에 기대 엉엉 하고 울었다.
주변이 컴컴해질 때까지 계속 울었다.
“형아, 밥 묵으란다.”
짜야가 호야를 흔들어 깨웠다.
호야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근데 형아 와 우노?”
“내가? 내 안 운다.”
호야는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손으로 얼른 훔쳤다.
“엄마, 형아 운대이!”
“내 안 운다! 아까 비 맞아가 빗물이다.”
호야의 변명에도 짜야는 혀를 낼름 거리며 안방으로 건너갔다.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크게.
‘휴, 인제 다행이다.’
호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바위에 쪼끔 올라갔다고 봐주는 갑다. 용왕님 의리는 있네. 큭큭’
그러나 호야가 일어서는 순간
예고도 없이,
이불에 호우주의보가 내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