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의 시간

#18. 《백두산 이야기》

by 서정연

누가 알려준 적도, 보고 배운 적도 없는데 아이는 스스로 뒤집기를 시도합니다. 틈만 나면 반듯이 누워 있다가 한쪽 발을 건너편으로 넘기며 몸을 뒤집으려 애를 씁니다.


애를 쓰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한쪽 발만 이리저리 방바닥을 차며 쿵쾅거립니다. 금방 넘어갈 듯하다가도 끝내 성공하지 못합니다. 작은 몸 어디에 이런 의지가 숨어 있는 걸까요. 마치 DNA 어딘가에 새겨진 지도처럼 신기하기만 합니다.


뒤집기를 시도할 때면, 평소에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던 두 손까지 꼭 맞잡고 힘을 줍니다. 온몸을 끌어모아 한 호흡에 힘을 쓰며 외칩니다.

“응야!”


여러 날 애쓰는 아이를 보다가, 나도 따라 누워 뒤집기를 해봅니다. 누운 상태에서 한쪽 발을 건너편으로 넘기고, 어깨를 비틀어 반동을 만들며 굴러갑니다. 반대쪽 발로 바닥을 밀어내는 순간, 팔을 빼서 지탱하면 성공.


이걸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숙련된 조교처럼 시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우리 집 고양이도 아이 옆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크림색 보름이는 아이와 똑같이 뒤집기를 연습합니다. 참견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함께하는 모습이 꼭 공동육아 보모 같습니다.



십여 일을 그렇게 애쓰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뒤집습니다. 그리고는 눌린 팔을 빼지 못해 낑낑거립니다. 힘이 드는지 얼굴을 바닥에 대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줍니다. 결국 순간적으로 팔을 빼내 바닥을 짚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한쪽 팔을 끌어당겨 지탱하면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끙끙거리던 아이는 끝내 그 팔마저 끌어당겨, 드디어 뒤집기에 성공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류재수의 그림책 ** 《백두산 이야기》**를 꺼내 읽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세상이 처음 생겨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땅이 맞붙어 있고, 해와 달이 둘씩 떠 있던 시절.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따님왕 백두거인은 천근활과 천근화살로 해 하나와 달 하나를 쏘아 바다에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세상은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됩니다.


이후 포악한 흑룡거인이 조선을 침략하자, 백두거인과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를 물리칩니다. 전쟁이 끝난 뒤, 백두거인은 벌판에 누워 깊은 잠에 들고, 몸은 거대한 산이 되어 지금의 백두산이 됩니다. 우리를 지키는 산으로 남은 것입니다.


《백두산 이야기》 한 장면


아이의 뒤집기 성공을 바라보며, 나는 이 신화를 떠올립니다. 작은 몸 하나가 세상을 뒤집어낸 것만 같은 순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자란 존재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로운, 멋지다.



아이는 자라고, 삶을 다시 읽습니다.



[함께 읽은 그림책] 《백두산 이야기》 | 류재수 (글/그림) | 통나무

글 | 서정연 아이가 자라는 찰나를 지켜보며, 그림책 속에서 삶의 물결을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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