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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크 Mar 31. 2016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할 용기

명함을 안 꺼내도 되는 모임 만들기


카페 오공의 손님으로 처음 갔던 때를 기억한다. 화장실은 여자화장실이 따로 있지 않아 감점, 디저트가 없어서 감점, 지하라서 감점...다 별로였다. 그랬는데 재정자립 모임이 있지,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 모임이 있어서 둘 다 신청해봤었다.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는 후지무라 야스유키라는 사람의 책. 한 달에 3일만 일하고 나머지는 자급자족하는 일과 놀이에 신경 쓰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그의 얘기는 2012년에도 지금도 이게 뭔소리야? 할만하다.  


백수가 되었을 무렵, 나는 공부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때 또 그렇기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또 다른 공부를 하려고 했다. 그때 나는 스펙을 올릴 방법, 일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공부'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은 얼마나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인지. 그때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남자친구 앞에서는 불안해 죽겠다고 울었다. 


그때 내가 나갔던 적게 일하고 행복하기 모임은 특이했다. 백수를 더 좋아하고(그래서 모임 시간이 오후 2,3시였다. 일하는 사람은 궁금해도 참여할 수가 없음;;) 백수니까 힘이 있다고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프리마켓도 해보고, 쿠키도 구워보고..무엇보다 신이 나고 편했다. 지금 내가 뭐뭐뭐를 하거나 꿈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딱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손에 잡히지 않을 때의 불안,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움. 

1등이 되는 것보다 "꿈"이 없는 게 부끄러운 게 우리 세대다. 


지금의 나는 고학력 반백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게 사람들에게 어떤 편안함을 주는 순간을 느낀다. 무엇을 준비하지 않아도 어디를 향하지 않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이런 안정감을 느끼기 까지의 시간은 그런 공간과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임을 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명함 없이 만나기, 명함을 주고 받지 않는 모임 만들기. 나를 백수라고 소개하기. 그것이 첫걸음이다. 이런 시간을 한참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힘이 생기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시간 시간을 보낼 공간을 만드는 게 이런 시간을 충분히 지낸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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