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그린 그림 이야기
제14장 파도 포말
처음이었다. 파도를 그리려고 맘먹고 그린 첫 작품. 점을 찍어 확장된 점의 덩어리를 모아 파도의 결을 만들었다. 물감을 흥건히 붓털에 묻혀 농축된 색을 찍어낼 때의 쾌감을 화폭에 담아봤다. 바다를 이루는 물 알갱이를 점으로 찍어 표현했다.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바다가 되길 바랐다.
바다가 될 수 있느냐는 의심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점을 찍을 때마다 크게 생겨나는 물결이 내 이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점의 움직임. 점들의 춤. 서로서로 뒤엉켜가며 이뤄내는 패턴이 곧 바다의 형상이 됐다. 천진한 아이처럼 그림을 그려낼 때, 내가 원하는 색상이 드러날 때, 색이 곧 맛으로, 식감으로 다가올 때, 기뻤다.
마음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물감 똥을 여백에 묻히며, 찰진 물방울의 엮임을 만들어냈다. 창조주가 작품을 만들 때의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나 역시도 그 손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맛보면서 흰 종이를 채워갔다. 녹색을 띤 짙은 파란색 ‘코발트블루(Cobalt Blue)’, 검은빛을 많이 띤 파랑 ‘검남색(Navy Blue)’, 검푸른 물감 ‘인디고(Indigo)’, 맑은 파란색 ‘시안(Cyan)’ 등. 내 그림을 다채로운 색으로 채웠다.
파란 점 뒤의 부분은 흰 종이로 남겨뒀다. 마치 포말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조금이라도 여백을 남기고 싶었다. 대학 다닐 때, 어떤 교수께 들은 말이 기억나서인지 여백을 남기게 된다. 여백이 좋다. 그는 흰 여백이 내 그림이 지닌 힘이라고 했다. 마치 동양화 같기도 하다고 말했던 그 교수의 말. 하얀 종이 배경이 만들어내는 바다의 물거품 포말. 물방울과 물방울 사이. 그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깨알 같은 파도 입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