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고로호 Jun 22. 2020

달라진 세상, 달라질 축제

공무원 회상기 #13

코로나로 여름 축제는 물론, 가을에 있을 지역축제마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몇 년 전, 이사 와서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의 지역축제에 놀러 갔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란 꽃들이 활짝 피어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도 전에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머리가 멍해졌다. 꽃밭 옆에 수없이 늘어선 천막에서는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꽃밭 사이사이 인파가 빼곡했다. 들어가지 못하게 쇠사슬로 막아놓은 안쪽까지 사람들이 들어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꽃이 흉하게 뭉개진 곳도 더러 있었다.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는 이런 축제에 내가 오나 봐라.' 그것이 내가 이 지역 주민으로 처음 축제를 경험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공무원으로서 축제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은 어떨까? 내가 일하던 곳에도 꽃 축제가 있었다. 전담팀이 일 년 내내 이 행사를 위해 일한다. 구청장을 비롯하여 높으신 분들의 관심사가 온통 집중되는 사안이라 축제가 가까워져 오면 그 팀에 관한 소문이 구청에 퍼진다. 팀원들이 새벽 2시에도 한낮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거나 너무 야근이 많아서 가정불화까지 일어났다는 그런 이야기들.


나는 그 팀과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담너머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도 없었다. 축제에는 그 지역 공무원 전체가 차출된다. 관련팀이 아닌 직원들은 축제 기간 중 하루나 이틀 정도만 근무하지만 일상 업무와 평소에도 자주 있는 각종 행사 차출에 더해지는 특별근무라 그 자체가 부담이었다. 직사광선 아래 경광봉을 들고 바람같이 달려오는 자전거를 피해 가며 관람객을 통제하고 있자면, 꽃 축제가 너무나 아름다운 계절 그것도 꼭 주말을 끼고 열린다는 게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행사 진행부터 홍보 및 부대행사 모든 부분에 직원들이 골고루 투입된다. 신규 직원은 코스튬을 입고 자치회관 퍼레이드에 주민들과 같이 참가하기도 하고 외모가 단정한 직원들은 축제 홍보를 위해 사진모델을 서기도 한다. 업무를 마친 금요일 저녁, 집으로 퇴근하는 대신 축제장에서 노래자랑에 참가한 동 주민을 위해 응원도 해야 한다. 꽃도 공무원도 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한 몸을 바친다.









그나마 도심의 꽃 축제라 이 정도로 끝나는 거지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건 지방의 축제라면 더 막중한 책임과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본 뉴스는 화천군의 산천어축제에 대한 것이었다. 이상기후로 인한 고온과 폭우로 산천어 축제는 두 번이나 연기됐고 그때마다 몇백 명의 화천군 공무원들이 새벽부터 양동이와 삽으로 축제장에 넘친 빗물을 차단하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우여곡절 끝에 축제를 개최했지만 동물학대 논란이 이슈가 됐다. 동물보호단체는 화천군수 등을 고발했고 환경부 장관은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고 산천어축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라고 발언했다. 원래 화천에 살고 있지 않는 산천어를 전국의 양식장에서 제공받아 축제에 사용하는데 그 양이 무려 일 년에 약 76만 마리라고 한다. 짜릿한 손맛을 위해 축제 전 5일 동안 산천어를 굶기고, 맨손으로 산천어 잡기 같은 부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 이 축제 하나에 화천군민의 생계가 달렸다는 입장과 생명을 존중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비교육적인 축제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환경과 생명보다는 경제와 생계가 갖는 중요성이 우세하다. 결국 환경부 장관은 화천군수에게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고 춘천지검은 고발 사건에 대해 식용 목적의 어류는 보호 대상이 아님을 근거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축제가 끝난 후에도 뉴스는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해 180만 명이 찾았던 산천어 축제의 올해 방문객은 40만 명 선으로 흥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천 산천어축제는 지자체 주도의 축제 중에서도 성공적으로 여겨지는 인기 축제이며 이 축제에서 나온 수익이 지역경제의 향후 1년을 좌우한다고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축제장에서 죽은 산천어도, 남은 산천어들을 폐기해야 했던 양식장 어민들도, 예상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한 지역 관광업계도, 연이은 악재와 논란으로 정신이 없었을 공무원들도 모두 안타깝게만 느껴질 뿐이다. 장기적으로 이상기후, 코로나,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 또한 요구되고 있는 변수 속에서 화천산천어축제도 지금까지 고수해온 행사 운영방식에 더 많은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 고유의 환경과 문화재, 특산품 등을 내세워 개성 있고 특색 있게 운영되는 지역축제도 다수 있겠지만 지역축제 전반에 걸친 지적은 예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관 주도의 축제에는 한계가 있으며 어느 지역이나 축제가 비슷하게 운영된다는 것,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그 효과가 미미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세우고 싶은 지자체장들의 선심성 사업으로 운영되기 쉽다는 내용이다. 전직 공무원으로 축제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도 그 지적에 공감한다.










다행인 것은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축제를 재정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성 평가와 정책토론을 거친 후 효율적인 축제 운영을 위해 축제를 통폐합하여 행사의 질을 높이려는 지자체에 대한 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창궐로 인해 다가온 새로운 세상은 이런 움직임이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축제된 취소를 온라인 축제로 대체하고 꽃 대신 구황작물을 심어 가꾸는 등 지자체들이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에도 세상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열어왔으니 앞으로도 매년 당연히 개최해야 하는 지역축제는 이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이 모든 것에 우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충북 괴산에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미선나무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식물의 책> 저자는 이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꽃 축제는 단순히 지역 경제를 위한 유인책으로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해당 식물의 존재와 가치를 알게 하고, 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의 <축제서 잡은 ‘산천어’, 집에 보내줬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에서 본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기자가 산천어축제에서 죽어가는 산천어 두 마리를 얻어 고향에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담은 기사다.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화천에서 160km 떨어진 양양으로 달려가 그때까지 살아있던 산천어 한 마리를 방생한다. 아마도 이번 축제에 투입된 많은 산천어 중에 생전 보지도 못한 고향으로 돌아간 유일한 산천어가 아닌가 싶다. “축제가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게 목적이라 한다면, 난 감히 자부할 수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에 온 그 누구보다 즐거웠노라고.” 살리기 위한 축제가 더 즐거웠다는 기자의 말이 인상 깊다.


이 글을 쓰기까지 나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축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지자체장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를 이용해서 손쉽게 주민들의 환심을 사고 재선을 위한 자신의 성과로 돌리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자주 개최되는 지역축제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지역축제에 대한 여러 기사를 읽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이왕이면 지역을 활기차게 살리는 축제, 주민의 생계를 살리는 축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을 살리는 축제, 그리고 더불어 생명도 살리는 축제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공무원으로 지역축제에 차출됐던 경험에 대한 신세한탄을 쓰기 위해 시작한 글이 너무 거창해져 버렸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야겠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지만 본능적으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는 아닌지는 느낄 수 있다.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사람은 달라진다. 고생해도 너그러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 땡볕 아래 온종일 경광봉을 흔들고 있더라도, 한겨울 새벽 양동이로 빗물을 퍼내더라도 일하는 마음만은 가벼운 그런 축제를 꿈꿔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의 사회복무요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