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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Aug 18. 2020

이런 것도 교훈이라면

 공무원 회상기 #16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마음속에 쏟아낸다. 내가 혼자 했던 말의 반 정도는 ‘힘들어’, 나머지 반의 반 정도는 ‘그래도 힘내자’였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점심이 맛이 없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짜증 난다. 왜 인간은 돈을 벌어야 하나. 친절하다고 칭찬받아서 기분 좋다. 꼭 정년까지 일해야지. 아니야,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 같은데. 시시콜콜한 말들이 뒤섞여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열심히 말의 더미를 뒤지다 보면 그래도 몇 문장 정도는 염두에 둘만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을 하면 남 탓을 하고 싶은 기회가 생긴다. 예를 들면 전임자의 말만 믿고 그대로 업무를 처리했는데 감사에서 문제가 됐을 때. 인사에 변동이 생기면 가장 먼저 직원들의 업무 분장이 논의된다. 업무분장표에 내 이름과 담당업무가 기재되는 순간부터 그 업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인수인계가 아예 이뤄지지 않았든, 전임자가 잘못 가르쳐줬든 어떤 것도 변명이 되지 못한다. 첫 감사를 앞두고 나는 가슴이 철렁한 실수를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6개월 동안이나 다른 기관에 전달해야 할 수수료를 고이 책상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임자와는 친한 사이였고 인사변경 이후에도 나란히 앉아 같이 민원을 보고 있었다. 전산에 제대로 수수료 자료가 뜨지 않아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냐고 물어봤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자료가 뜰 거라는 대답에 나도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민원에 행사, 잡일에 치여 6개월이 순식간에 흘렀다. 서류를 민원에게 교부하고 교부 처리 버튼만 클릭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기본 중의 기본을 놓쳐 이런 일이 생겼다. 감사를 앞두고 팀장님에게 실수를 보고하고 6개월치 자료를 수기로 정리한 후 밀린 수수료 20만 원을 정산했다. 감사팀에게도 이실직고했다.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전임자에게 섭섭했지만 그보다는 남의 말만 믿고 제대로 업무를 챙기지 않은 내가 제일 야속했다. 짧은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옆에 별표를 그려 넣었다. ‘내 일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그다음 밑줄을 여러 번 그은 문장은 ‘나를 먼저 챙기자’였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굳게 믿는 개인주의자인데 왜 출근만 하면 콩쥐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보면 부작용이 생긴다. 신규 시절, 직원 격려차원에서 지방 연수를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저 마음에 걸려서 내 순서를 후배에게 양보한 뒤, 제도 자체가 없어졌다. 당시 같이 근무했던 신규 공무원 여섯 명 중에 나는 유일하게 그 연수를 다녀오지 않는 직원이 됐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대직자가 힘이 들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교육도 자주 미뤘다. 그러다 보니 승진을 앞두고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집합교육시간이 모자랐다. 8급 승진을 앞두고도 7급 승진을 앞두고도 인사과에서 당장 교육을 듣지 않으면 승진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표창을 남에게 양보한 적도 있었다. 나 진짜 왜 그랬지?


내가 양보하고 배려한 것을 끝까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나뿐이다. 먼저 나를 챙긴 다음에 남을 배려해야지 다른 이를 챙긴 다음 그 뒤에 내가 남는다면 오히려 남을 원망하기 쉬워진다. 직장 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조화, 친절, 양보, 배려라는 말보다 이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했다.


‘싸울 일이 생기면 싸워라’ 공무원 재직 시절에는 우물거리며 자신 없이 내뱉은 말이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후회되는 부분이 좀 더 참을 걸이 아니라 참지 말고 더 싸울 걸이란 걸 알게 되고는 다시 꼭꼭 눌러쓴 문장. 직장에서 누가 나의 신경을 거스를 때마다 싸운다면 전문 파이터가 돼도 모자랄 지경이니 매번 싸우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싸운다는 의미가 바람같이 달려가 상대의 멱살을 잡으라는 뜻도 아니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말고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알리는 것, 그것을 싸운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꼭 필요한 순간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냥 넘어가는 게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로 비칠 수 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겠다 싶을 때, 상대로 인해 참고 참아온 분노가 내 안에서 나를 갉아먹을 때. 그래서 이번 한번 참는 일이 더 이상 불가능할 때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후회한다. 더 싸웠어야 했는데, 몇 번 싸우지 못한 게 아쉽다.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은 맘에 두고두고 쌓여서 지금도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


평소에 무슨 일이든 웃고 넘기는 내가 책상에서 일어나서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을 때,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행동에 부당함을 제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강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말하는 중간에 버벅거리며 감정적이 되기도 했다. 동시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속이 시원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또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 시선을 신경 쓰다가 싸워야 할 타이밍을 놓친다. 호구로 보이는 것보다 성질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훨씬 편한 걸 알면서도.







민원이 많았던 어느 날,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겉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사람이 번호표를 뽑았다. 저 사람이 내게 오면 어떡하지 싶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순번이 다가오자 갑자기 한 직원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연달아 그 옆에 있던 직원도 나가버렸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화장실이 급한 타이밍도 아니었다.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상황으로만 판단했을 때 진상 민원을 피해 도망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민원대에 남은 건 나를 포함한 세 사람뿐. 나도 그 민원을 상대하기 싫었지만 꾹 참으면 자리에서 계속 벨을 눌렀다. 이제 그 사이에 두세 명의 민원밖에 남지 않았다. 난 이대로 또 한번의 곤경을 맞게 되는 것인가? 희한하게 나머지 민원들이 모두 다량의 업무를 들고 왔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밖으로 나갔던 직원이 돌아와 벨을 눌렀을 때 그 사람의 차례가 됐다.  ‘일어날 일은 기어코 일어난다’ 예전에 밑줄을 쳐놓은 문장에 별표를 하나, 아니 여러 개 더 그렸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민원이 있다. 나도 민원대에서 업무를 보는 초기에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동사무소 단골 진상 손님이 대기표를 뽑는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어떻게든 그 사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민원을 천천히 보거나 빨리 보면서 속도를 조절한다. 그것도 안되면 중간에 일어나서 팩스로 들어온 서류가 없나 뒤적거리기도 한다. 용을 쓰면 쓸수록 내가 원하지 않는 불운은 내 앞에 기필코 당도하고 말았다. 나한테 올 사람은 오더라. 인생의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배움이 느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당연한 말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었다.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훨씬 나중에 알았을지도 모르는 이 몇 줄. 마음고생에 비해 수확이 적어서 허무해지기 전에 달리 생각해보자. 별것 아닌 이야기 사이를 직접 걷고 달리며 경험으로 써가는 짧은 문장. 그 문장들을 천천히 차곡차곡 모으는 것, 나한테는 그게 삶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삶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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