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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Oct 20. 2020

공무원 하다 사라지고 싶었던 사연

공무원 회상기 #19

기분 좋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나지막이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산책하는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 부드러운 햇살이 세상 모든 것을 감싸고 있던 가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풍경 속에 나만 멍한 눈빛으로 어둠에 잠겨있었다.  


그때 나는 두 번째 휴직을 고민 중이었다. 일하는 게 힘들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부터 줄곧 그랬다. 자주 아팠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목과 어깨에 번개처럼 강렬한 전류가 흘렀다. 서류 작업만으로도 부담스러운 몸 상태로 월요일 퇴근 후에 열리는 국장님 주재 족구대회를 위해 양손 가득 장을 봤다. 과에서 배출되는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수레에 실어 나르고 상사의 부탁으로 무거운 짐을 들다가 번쩍하고 내려치는 통증에 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직원들은 잦은 서류 제출과 행사 차출에 대한 불만을 만만한 8급 서무인 내게 표출했다. 일이 별로 없는 다른 팀 팀장 한 명은 심심할 때마다 멀리 떨어진 내 자리까지 와서 꼬투리를 잡았다.


틈날 때마다 병원을 다니길 한 달, 목의 통증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지만 출근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쉴 수가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정신과를 찾았다. 진단은 우울 장애. 약을 처방받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자꾸 사라지고 싶다고 털어놓은 속내에 선생님이 내 말을 정정해줬다.

“그건 사라지고 싶은 게 아니라 죽고 싶은 거예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몸이 아프고 안 좋은 상황들이 한꺼번에 터져 맞물려 돌아가고 사람들마저 내 마음 같지가 않는 일이 반복되면 가끔 찾아왔다 사라지는 우울감이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좋다는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 왜 일시적인 우울감을 넘어 마음이 극단으로 치달았을까?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봤다. 꽤 오래전이었다. 첫 발령지에서부터 몸이 자주 아팠다.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한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위경련에 시달렸다. 얼굴은 항상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뒷목이 뻣뻣했다. 두통과 어깨, 손목 통증이 친구가 된 지 오래였다. 임파선이 자주 부었고 기관지염과 탈모도 찾아왔다. 3년 5개월을 일하고 신체적인 질병으로 휴직을 하게 됐다. 그때는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걸 몰라서 몸이 문제라고 여겼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은 항상 같이 무너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그때부터 심각한 우울감에 자주 시달렸다.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배가 불렀다. 사기업은 그것보다 더 힘들다. 무슨 그런 약한 소리냐. 조언을 가장한 질책이었다. 위로로 포장된 한탄도 있었다. 이곳이 싫지만 여기를 떠나서 할만한 일이 없다. 본인도 돌발성 난청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지만 여자든 남자든 마흔 넘으면 어디서 이만한 월급 받고 일 못한다. 몸이 아파서 쉬고 싶지만 대출 때문에 쉴 수 없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어느 쪽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사고가 한 가지 결론을 향해 내달렸다. 정년이 될 때까지 평생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발령이 나고 승진을 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때까지 버틸 힘이 없었다. 배부른 신세한탄이라는 말,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남들의 말을 기준 삼아 내 고통을 온전히 나의 모자람 탓으로 돌렸다. 세상에는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내가 뭐라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공무원을 하면서 이렇게 힘들어하나 한심했다.


그만둘까도 생각해봤다. 인생을 걸고 공부해서 얻은 직장을 그만둔다고? 이제 삶에서 공무원이란 이름을 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주위에 폐만 끼치는 짐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그만두는 것은 내 선택에 없는 일이다. 공무원을 그만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지도 않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사라지는 것. 불면증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되뇌었다.





공직사회에서 한번 생긴 평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째 휴직을, 그것도 우울증을 사유로 쓰게 된다면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가는 구제불능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봐 무서웠다. 혼자 끙끙대던 고민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목 치료에 정신과 약까지 먹고 있는 내 눈에 칼퇴는 기본에 장기휴가까지 척척 쓰는 직원들이 들어왔다. 각자의 업무에 따라 바쁘고 한가한 시즌이 다른데 그때는 마음이 아픈 상태라 나 혼자 고생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버티기보다는 도망치기를 택하고 휴직계를 냈다.  


객관적으로 내가 남들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면 휴직을 낼 수 있는 직장이라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공무원이라는 특수성뿐만 아니라 조직생활 자체를 부담으로 느끼는 성향, 당시 원만하지 않았던 개인사, 쉽게 지치는 체력 등 많은 문제들이 한데 엮여 발단이 됐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에 기인했든 휴직을 기점으로 나는 천천히 회복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씩 머릿속에서 지워나갔다.


이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함부로 다른 이의 고통을 판단하지 않고 남의 척도로 내 고통을 재단하지 않게 되기까지 끝이 없을 것 같던 우울의 시간을 보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삶의 바닥을 쳤던 그 가을이 떠오르면 안으로만 깊게 파 들어가던 시선을 거두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다.

"애쓰셨어요. 그 누구도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쉽게 가늠할 수 없어요. 버텨도 멋있지만 한발 물러나도 비겁하지 않아요."

어디선가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두 팔을 높이 들어 힘껏 흔들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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