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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Oct 23. 2023

무엇이 부러운가

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4

고양이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그것도 아주 많이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알고 보면 직장생활의 고단함에 대한 푸념이  이상인  에세이집이 출간된 후였다동일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만나면  책을 보는 것만큼이나 특별한 마음이 들었다인터넷 서점의  카테고리 혹은 책방의 같은 서가에 함께 놓여있는 책들인쇄소에서 이제  나와 어리둥절한 채로 학교에 함께 입학해  반이  친구들처럼 반가웠다그런데 책상에 나란히 앉으려는 순간 단짝이   있을  같던 책이 갑자기 다른 차원의 책이 되어버렸다 책은 학생들 가운데 수줍게 숨어있는데 베스트셀러가  책은 계속해서 재쇄를 찍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친밀함을 품었던 동기가 엄청난 천재임이 밝혀져 월반을 해버리고 나는 열등반으로 떨어져 버린  같은 기분.


내가 이런 기분을 맛본 이유는  고양이  마리 때문이었다고양이의 세계에서 누구나 아는 우주대스타제주도에 사는 고양이 히끄의 이야기가 담긴 <히끄네 > 출간되자마자 고양이를 소재로  책을  사람으로서, <히끄네 > 출판한 야옹서가를 만든 고양이 전문작가 고경원 님의 팬으로서도 깊은 애정을 느꼈다바로 책을 구입했음은 당연했다. <히끄네 > 바로 화제의 책이 되었다 되기를 바랐고  결과를 축하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하지만 책의 성공을 축하하는 마음에 앞서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나중에 돌이켜보니  책을 두고 월반해 버린 천재가 고양이 히끄였다는 점에서 나는 운이 굉장히 좋았지만 당시에는  책도 그런 관심을 받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책이 나오고 나는 정신이 약간 나가있는 상태였다평생을 독자로만 살아왔다돈을 내고 책을 사보면서도 상업출판은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는    번도 생각해  적이 없을까책이 매대에 깔리자마자 판매와 관련된 지수와 순위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숨어버리고 싶었다책의 판매가 책의 가치를 그리고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같았다책을 내기 전에는  자신이 세속적 욕심이 비교적 덜한 사람인  알았기에 판매근황에 일희일비하며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절규하는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곤혹스러웠다.


신간홍보의 시기가 지나니 정신이 들었다평소에도 누군가를 쉽게 부러워하곤 하는데 하다 하다 이제 고양이까지 부러워하다니도대체 나는 뭐가 부러웠던 걸까직장을 다니며 취미로 쓰고 그리던 내게  책을 내자는 제안은 믿기지 않은 행운이었다 행운을 움켜쥐며 뛸뜻이 기뻤지만 동시에 읽을 가치가 있는 한권의 책을 써낼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무사히 책이 나온 후에도 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판매실적에 마음을 졸였다글을 계속 써도 될지  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다음 책을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내면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내가 찾은 방법은 외부의 메시지에 기대는 것이었다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 눈에 보이는 강력한 확신은 없었다 책이 잘된다는  자신을 갖고 다음 작업을 이어나갈  있다는 뜻이고 그건 내가 앞으로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상을 보낼  있다는 뜻이었다내가 히끄를정확히 말하면 <히끄네 > 저자를 부러워했던 이유였다.


불안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판매가 부진하여 아무도  책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직장을 다니며 바쁜 시간을 쪼개 원고를 만들어나간 경험은 고스란히  것이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쓰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해   있을 것이다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면 된다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일상은 내가 충분히 만들어 나갈  있는 것이었다고양이 히끄 덕분에 책을 만드는 세계에 발을 들이자마자 유용한 기술을 배웠다부러운 마음이  때마다 정말 무엇이 부러운지    짚어보는 습관.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부러워한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이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열등감질투심자괴감과의 기나긴 싸움이기도 하다세상엔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이 너무나도 많고계속해서 새롭고 놀라운 책이 탄생하고 있다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고통스럽다.” 강민선 작가의 <끈기의 말들> 나온 문장에 줄을 친다내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이들 가운데 가장 근면하게 쓰고 책을 만드는 그조차 이렇게 고백할진대 간헐적으로 글을 쓰는 내가 매번 새롭고 놀랍고 아름다운 책들이 쏟아지는  책의 세계에서 부러움에 자주 눈을 감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얗고 통통한 히끄를 떠올린다내가 진짜 부러운 것은 삶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태도일상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하여 기록하는 행위창작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성실함매일 책상에 앉아 문장을 만들어냈던 날들이라는  되새긴다작은 책과  숨어있는 책과 알려진  모두 어느 하나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면 부러움은 가라앉고 세상의 모든 쓰고 그리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수희찬탄의 마음이 일어난다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는 <히끄네 >  때마다 고양이 히끄가 아니었다면 틈만 나면 열패감에 시달리는 인간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뜨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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