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8
한동안 끝을 생각하며 살았다. 이 모든 게 결국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하면 힘든 일도 견딜 만 해지고,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괴로운 마음이 가라앉았다. 언제든 끝날 수 있다. 그 끝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하루의 제단 위에 끝이란 단어를 올려놓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오늘만 생각하자고 결심했다. 이 방법은 유용해서 어려웠던 시기를 통과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나는 대신 미래를 잃었다. 당장 내일도 상상할 수 없는데 미래라니.
그림을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격려해 준 화실 선생님이 있다. 오래전 선생님이 내게 해준 이야기. 사람들이 지금 나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지금의 그림만 보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그들은 동시에 내 미래의 그림도 기대하고 있는 거라며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미래를 따로 기대하지 않아도 매일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면 미래의 그림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멈추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뭐가 문제였는지도 모른 채 나는 글도 그림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은 날들을 만났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일상을 소재로 삼는 창작자가 자신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는 것은 창작 의욕의 상실을 의미했고 당장 오늘 가벼운 드로잉 한 점을 그리는 일도 어려워졌다.
나는 ‘삶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노력을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버릇이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섬뜩한 관점이 아니라 뭐든 끝을 먼저 생각하며 삶을 관조하는 것이 죽음의 관점이지 싶다. <영감의 말들> (유유, 2022)
책을 읽다 그동안 내가 죽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 덜 무거웠고 인생에 덜 욕심이 났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작년 한 해 나는 꾸준히 삶의 관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안되 그 끝이 당장 내일이 아닐 수 있고 그 끝과 지금 사이에는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인식을 되찾으려 했다. 신기하게도 삶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다시 미래를 상상하게 됐고 잘 쓰기 위해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창작을 시작한 이후 언제나 어제보다 잘 쓰고 잘 그리고 싶었음에도 중요한 건 지금 창작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그냥 지금 내가 가진 능력만큼만 쓰고 그리면 된다고 말해왔다. 그림과 글쓰기는 직장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시작했던 취미였다. 마음대로 즐기는 것이 쓰고 그리는 행위의 원초적인 목적이었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지만 나는 재미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성장하려면 연습이 필수인데 연습에는 규율과 강제가 필요했고 때로 지루했다. 끝을 바라보는 태도도 영향을 끼쳤다. 언제 인생이 끝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장기계획을 세우고,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이룰 수 있는 발전은 티끌만 한데 어느 세월에 그 작은 것들을 쌓아 눈에 보이는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진 상태에서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헛된 욕심처럼 느껴졌다.
삶은 유한하지만 때로는 영원을 가정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끝없이 떠오른다 해도 별다른 발전 없이 매번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과연 그 일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었다. 오늘의 글과 그림을 잃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헛되이 여기니 연습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연습을 하지 않으니 발전이 더디고 발전이 더디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삶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진실된 욕망을 인정하고 미래를 상상하니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연습하고 싶어졌다. 처음 그림을 그리며 꿈을 꾸기 시작할 때처럼 나의 미래를 믿으며, 긴급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일에 매일 시간을 헌신할 준비가 된 것이다. 가을에서 한겨울로 넘어오는 시기를 바쁘게 보냈다.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책을 함께 읽고 글을 쓰는 에세이 쓰기의 한 기수를 마쳤고 새로운 기수를 등록했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식물공부도 시작했다. 한 시간씩 책상에 앉아 아트북을 보며 연필드로잉도 하고 있다. 며칠 전, 어른이 된 후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아침의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말에만 허락된 게임을 하기 위해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게임기를 건네받았던 어린 시절처럼,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를 신나게 만든 건 잃었던 미래를 다시 찾았다는 감각이었다. 기나긴 겨울의 끝에 새롭게 만날 날들이 기다려진다. 다가올 계절에 기대를 품는 일이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