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7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새 책이 나온 후 매일 아침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책이 잘 팔리고 있는지 확인하다가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만큼은 책의 판매동향 따위는 절대 살피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는데 부질없는 결심이었다. 홀린 듯 책 제목을 검색하고 그 아래 붙은 숫자를 살폈다. 온라인 서점의 판매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숫자가 어떤 기준에서 산정되는지는 모르지만 숫자의 크기가 클수록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책이란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내 책에 붙은 숫자는 겸손했다. 작고 작은 미물들과 눈을 맞추며 낮은 자세로 쓴 책이기 하지만 숫자가 땅에 붙어있으면 곤란하다. 이번에도 판매가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잠이 덜 깨어 멍했던 마음이 저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실망이야.”
자립작가지망생으로 보낸 시간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기적같이 출간계약을 맺고 감격에 겨운 것도 잠시뿐, 출간 후에는 판매결과에 낙심하곤 했다. 창작의 성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라면 으레 실망이 따라왔다. 일러스트 페어에 나간 적이 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하는 일은 오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오랜 준비 끝에 페어가 시작되고 나보다 먼저 여러 번 페어에 참가한 적이 있는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들의 당부가 특이했다. “실망하지 마세요.” 그들은 경험을 통해 처음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한 내가 실망할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날만 해도 후회 없이 준비해서 드디어 버킷리스트를 달성했는데 상심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 뒤로 4일 내내 내 부스 앞은 썰렁했고 나는 내 그림에 관심이 없는 관람객들에게 고양이 그림과 인스타 아이디가 적혀있는 무료스티커라도 나눠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페어가 끝난 후 남은 건 이백만 원에 가까운 적자와 큰 박스에 한가득 담겨있는 남은 굿즈, 그리고 실망이었다. 실망이 뭐 별 건가. 잠시 의기소침했다가 또 훌훌 털어버리면 되지. 하지만 의욕이 감소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 끊임없이 엽서나 작은 굿즈를 만들었는데 일러스트 페어 이후로는 굿즈를 만들지 않는다. 실망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책의 판매동향을 확인하고는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다가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수영을 하러 갔다. 자유형으로 몸을 푸는데 폼이 제법 잘 나온다. 배영도 그만하면 뒷사람에게 따라 잡히지 않고 속도를 낼 수 있다. 접영은 못하지만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다 못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평영만 하면 낚싯줄에 걸려 수면 위로 끌려 올라간 물고기처럼 신체의 통제력을 잃는다. 전날 평영 강습을 받을 때 웬일인지 몸이 앞으로 꽤 잘 나가서 오늘도 물속에서 매끄럽게 움직이는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어제 느꼈던 안정감과 속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옆레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파도에 휩쓸려 몸의 균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하루가 시작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연이어 맛보는 두 번째 실망.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수영은 잘 안 돼서 마음이 상한다고 해도 의지가 꺾이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또 수영가방을 챙겨 수영장에 간다.
생각해 보면 직장을 다닐 때 실망할 일이 있었던가? 공무원 합격을 한 후 웰빙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는 평생직장에 대한 원대한 희망을 품었던 나는 임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깨달은 후 직업에 대한 기대를 일절 품지 않았다. 화가 나고 우울한 적은 있어도 실망이란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다시 실망하기 시작한 것은 창작으로 성과를 내고자 결심한 시점 이후였다. 독립출판으로 첫 그림책을 만들면서 그 책이 계기가 되어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인쇄가 잘못 나오는 바람에 책을 파기하고 다시 제작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의욕이 삽시간에 꺾여버렸다.
새롭게 창작의 결과물을 내놓을 때마다 널따란 강의 건너편으로 단번에 넘어갈 수 있는 거대한 다리가 놓이길 원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면 위에 디딤돌을 한 번에 단 하나씩만 놓아가며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매번 돌을 올리는 작업을 마치면 새로 올린 디딤돌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본 후 다음 발걸음을 위한 새로운 돌을 놓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하나의 돌을 놓을 때마다 크게 낙담할 필요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기대를 걸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내가 그 일을 사랑하며 그 일로 뭔가를 이뤄보고 싶다는 의미.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수행한 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감정이라니, 실망이란 비록 씁쓸할지언정 얼마나 멋진가. 나는 앞으로도 쓰고 그리는 일에 기대를 품을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디딤돌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릴 테지만 기대가 있는 한 실망도 따라오겠지.
어떻게 해야 한담. 창작도 수영처럼 실망이 반복돼도 절망이 되지 않은 영역으로 만들면 어떨까. 어제의 기대가 어긋나면 일단 실망을 하자. 맘껏 해보자. “내 책 재밌는데 왜 안 읽어주는 거야, 왜! 왜!” 혼자 울부짖어도 괜찮다. 얼마간 속이 시원해졌으면 수영을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거다. “이제 막 평영을 배운 수린이 회원들도 나보다 다 평영을 잘하잖아.” 의기소침했다가도 수영가방을 들고 다시 수영장으로 향하는 것처럼 책상에 앉자. 기대를 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사는 일의 기쁨을 떠올리며 작업을 이어나가자. 그래, 어쩌면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시원하게 물살을 헤치며 개구리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