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6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한 줌의 세계’라는 표현이 나왔다.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으니 출판시장의 파이가 줄어들어 마치 한 줌처럼 작고 작은 세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
"책이 얼마나 좋은데요, 종이 냄새도 좋고. 왜 사람들은 점차 책을 읽지 않을까요?"
의아함을 표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이미 한 줌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 조그맣고 소중한 한 줌의 세계가 떠오를 때마다 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바닥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생기는지를 가늠해 본다.
한 줌의 세계를 기웃거리다 만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만나면 수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책과 영화와 작업, 계절에 따라 흐물거렸다 단단해지는 의지, 뒤늦게 얻은 배움과 깨달음, 요즘하고 있는 운동, 건강의 악화 혹은 회복, 좋아하는 음식, 피부의 변화, 가족과 반려동물의 안부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크고 작은 뉴스들. 그들은 모두 책을 사랑하는 독자다. 글을 쓰거나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기도, 때로는 편집자이거나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교류의 장이 열릴 때마다 평범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같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매번 감격해 온 에너지를 다해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정적으로 마음을 털어놓는다. 만남에서 내가 빼먹지 않고 입에 올리는 주제가 있다. 어떻게 새사람으로, 부지런한 창작인으로 거듭날 것인가의 문제.
의욕이 솟구치던 언젠가는 대화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저도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어요!’라는 결심을 추임새처럼 반복해 나중에 <결심의 말들>을 집필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다음 날 열의 넘치던 어제를 글로 남기려는데 열 개도 넘게 했던 다짐 중에 기억나는 건 건강을 위해 아침에 오트밀을 먹어보겠다 하나였고 그래서 한동안 오트밀만 열심히 먹고 말았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길고 긴 겨울을 마구간에서 갇혀 지낸 후 맞이하게 된 봄날, 풀이 돋아나기 시작한 부드러운 흙을 밟는 조랑말 같은 인간이 된다. 나를 신이 난 조랑말로 만드는 사람들은 대게 한 줌의 세계에서 만난 이들과 일치한다.
그들 앞에서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 보일 필요도 없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사회는 솔직함이 약점이 되어 돌아오는 곳이었는데 책과 창작의 영역은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매력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 두려움, 불안, 꿈, 희망, 허물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수록 서로를 존경하고 보듬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과거에 내렸던 성급한 단정이 떠올라 실소가 나온다. 과거 나는 지금 일하는 곳이 사무실인지 집인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직장동료인지 가족인지 헷갈릴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한 몸처럼 붙어서 근무했다. 동료애가 피어나다 못해 흐드러진 그곳을 떠나던 날, 다시 직장에 다니지 않는 한 오늘부로 내게 영원히 동료는 없을 거라고, 그 기분은 한겨울 혼자 떠도는 다리 아픈 비둘기처럼 외로울 거라고 자못 비장했다. 지금은 그때의 예감이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직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나를 품어주는 무리가 있다.
미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를 보다가 무릎을 딱 치는 대사를 발견했다.
꿈을 좇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과 함께 꿈을 좇는 동료들이죠.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않고 때가 되면 꿈을 이룰 거라 믿어 주는 사람들, 마침내 커다란 스포트라이트가 비출 때 당신이 마음껏 빛나도록 힘을 보탤 사람들. 그들이 소중한 존재인 겁니다.
걸음이 느리고 자주 멈추는 나를 격려해 주는, 이룬 성과를 제대로 보고 힘을 내기보다 게으르게 보낸 시간을 자책하는 내게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긴 준비과정을 마치고 책이 나올 때는 누구보다 먼저 읽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그들의 이름은 동료였다. 대체로 몸이 아프거나 슬럼프를 겪는 쪽은 나였지만 상승과 하강의 반복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동료 한 명이 오래도록 침체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말솜씨가 부족해 위로와 격려에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말을 더듬으면서도 마음을 다해 그 옆에서 함께 전전긍긍했다.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다시 책을 낸 건 오롯이 동료 본인이 이루어낸 일이지만 오랜만에 나온 그의 책을 앞에 두고 나의 책보다 다른 이의 출간이 더 기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직장도 없는 내게 이런 곡진한 동료애가 발현되다니. 그만큼 나 또한 이 한 줌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싶었나 보다. 한 곳에서 같이 일하지 않기에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만나지 않는 시기에는 서로를 잠시 잊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약속을 잡으며 설레는 소중한 사람들. 신기한 건 시간이 갈수록 이 새로운 동료애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매개로 알게 된 이들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료로 느껴져 애틋하다.
단골책방에 책을 주문했더니 사장님이 엽서에 편지를 써 동봉했다. “책방을 운영하며 진고로호님을 만난 건 행운이고 행복이에요. 늘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이 한 줌의 세계에 함께 오래오래 머무르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작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한 줌에서 한 톨이 되는 불상사를 막아내고 한 줌이 아니라 못해도 두 줌 정도까지는 확장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역시 열심히 읽는 수밖에, 그리고 용기 있게 쓰고 지치지 않고 그릴 수밖에. 영원히 속해있고 싶은 세상을 위해 나는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