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고로호 Jul 05. 2024

책을 팔기 위해 나는 무엇까지 팔 수 있을까

자립작가 지망생입니다 #10

책을 내기 시작하며 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책을 팔기 위해서는 나도 함께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한 마디로 유명해져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부담스러운 수줍은 사람. 평생 숨어있기 좋아하던 부끄럼쟁이가 무슨 수로 갑자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손쉬운 인스타 부지런히 업로드하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책도 나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공무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은 책이 나왔을 때 변화가 생겼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책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팔리라, 많이 팔리라. 전과는 달리 나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이런 각오가 전해진 것인지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는 많은 기회를 마련해 줬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과 유튜브에도 나가고 라디오 인터뷰도 해보고 잡지 인터뷰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도 2회나 열고 향후 북토크까지 예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기회가 하나하나 들어올 때마다 “자신은 없지만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제안을 수락했다. 첫 인터뷰를 했을 때는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셔츠의 겨드랑이 부분에 땀이 배어 들어 인터뷰 시작 전 화장실에서 양팔을 들고 한없이 서있기도 했지만 곧 긴장과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홍보활동을 몇 차례 이어갔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공무원 시절 동료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 공무원 퇴직이란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반가운 얼굴이 보여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좋았어! 이대로라면 책도 팔리겠지.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주제는 흥미를 유발하기도 쉽지만 욕먹기도 좋다는 사실. 다소 자극적으로 달린 제목의 콘텐츠에 악플이 달렸다. 세상에는 공무원보다 더 힘든 직업이 많고 원래 일 못하는 인간들이 그만둔 뒤 말이 많다는 뉘앙스였다. 몇몇 댓글은 악의적이었지만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상 객관적으로 악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내 얼굴이 공개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에 그런 댓글이 달리니 많은 공감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보는 일이 힘들었다. (지금은 제목도 평범하게 수정되고 안 좋은 댓글도 지워져 영상의 댓글창은 평화를 찾았다.)


책을 파는 일은 정말 어렵구나. 용기를 내어 환한 세상으로 발을 디뎠는데 금방 다시 조용한 곳으로 숨고 싶어졌다. 급격히 자신을 잃은 나는 다른 유튜브에 출연하는 것도, 모집을 앞두고 있던 북토크도 고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책의 공식 홍보활동이 이대로 끝나는 가 싶었는데 책이 출간되고 몇 달이 지난 후 무려 KBS 뉴스에서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다. 이건 겨울동면에 들어간 곰이라도 다시 세상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강력한 유혹. 이 인터뷰를 계기로 어쩌면 책과 나를 함께 팔겠다는 홍보욕구가 다시 생겨날지도 몰랐다.




인터뷰는 오전이었는데 출근시간에 차가 막힐 가능성까지 고려해 넉넉잡아도 인터뷰 시작 1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화장도 머리도 단정하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다. 그런데 비 오는 월요일이란 걸 감안해도 상상이상으로 길이 막혔다. 평소에 지하철역까지 30분 걸리는 길이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만원 버스에서 한참을 시달린 후 오른 지하철에서는 사정없이 부는 차디찬 에어컨 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정신이 몽롱해져서 한정거장을 더 가는 바람에 되돌아와야 했고 약속장소까지 도보로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리부었다. 집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반이 훌쩍 넘어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와 추위에 완전히 지쳐버렸고 거울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바로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그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니 30분 정도 되는 인터뷰 중에서 1분도 되지 않는 분량만 뉴스에 나간 게 오히려 위안이었다.


나중에 내가 나온 뉴스를 보는데 인터뷰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넓은 모공이 고난의 이동길에서 무너지고 떡져버린 화장으로 더 도드라진 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책을 팔기 위해 나는 내 모공까지 팔았다. 여기서 더 팔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책도 팔았다. 뉴스 출연이 아니었다면 2쇄를 찍지 못했을 것이다. 뉴스를 보고 여러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음에도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 뒤 책을 팔기 위해서는 나를 팔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버렸다. 어느 책에선가 생전에 무명이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구절을 봤다. "나는 무명인입니다.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되다는 건!"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내향인이 감히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을 품다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앞으로 내가 뉴스에 출연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나는 무명의 홀가분함을 마음껏 즐기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망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