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왜곡하는 나란 사람

반성합니다.

by 라이크치즈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민주 엄마야! 민주 엄마 맞지?"

"네. 네!"

"아이고, 내가 민주 엄마를 잃어버렸나 했다. 전화번호 바뀐 줄 알고, 연락이 안 돼서 잃어버린 줄 알았다. 내가 민주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 그랬더니 우리 아저씨가 바뀌었으면 연락해줄 사람이라고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 걸어보라는 거야. 아이고, 그 양반 말듣 길 잘했네. 동신이 엄마 찾았어, 찾았어!!!"

"내가 민주네 집에 찾아가고 싶은데 시간 되는가?"

"그럼요. 오후 수업 전까지는 언제든 괜찮아요."

"그려, 그려. 그럼 내일 11시에 내가 갈게, 주소 좀 알려줘. 보고 싶다, 민주 엄마야! 그럼 내일 보자. 만나서 이야기함세."

"네, 네! 내일 뵙겠습니다."


신혼 첫 집에서 아파트 같은 줄에(복도형 아파트) 살던 이웃분과의 통화였다.

무슨 일이실까? 몇 년 만의 통화였고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사실 신혼 때면 20여 년 전 이야기이다.

같은 층에 살면서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이였고 나보다 10여 살 위분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나를 좋게 보셨는지 자녀들이 고등학생이 됐을 때 두 아들들을 내게 과의 수업을 받게 하셨다.(나는 재택으로 개인 과외하던 선생님이었다)

그때는 아이들 상담건으로 자주 뵈었고 식사도 함께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를 예뻐하시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아들들이 성장해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쯤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가만 생각보다...

아들이 결혼을 하나? 그래서 알리려고 집에 오신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만약 그렇다면 축의금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 그래도 내가 지도했던 학생인데... 하면서 그분이 내게 이렇게 연락한 건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점심식사 때 오시니까, '감바스 요리를 해드려야지' 생각하고 준비를 해 놓았다.

다음날 10시 30분쯤 인터폰이 울려서 문을 열었더니, 그분은 보이지 않고 과일집에서 과일배달이 왔다.

배달하시는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방문하시는 손님이 미리 주문 배달시키시고 배달을 부탁하시면서 본인은 걸어오신다고 하셨다는 거다.

어맛!! 세상 처음 보는 크기의 수박과, 사과크키만 한 자두 한 박스, 향이 폴폴 나는 복숭아 한 박스...

"아이고~ 그냥 오시지 왜 이리 과일을 많이 사 오셨어요?"

"말도 마~민주 엄마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찾아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과일가게에서 젤로 좋은 거 달라고 부탁했어. 과일 상태 괜찮지? 내가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가서 골라서 배달시키고 걸어오는 길이야"

친한 친구가 이렇게 했어도 덜 감동적일 것이다.

예상치도 못했었고, 자주 연락하던 사이도 아니었기에 정말 놀랐다.

이분은 정말 특별한 분이시기에 내가 놀라고 더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이분은 남편분께서 금융계에 근무하시는 안정된 직업을 가시진 분이긴 하지만, 결혼 전,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주셔서 결혼 후에는 빚을 갚느라 오랜 기간 고생하셨던 분이고,

얼마나 안뜰 하신 지? 아직까지도 그 옛날 상 냉동 하냉장 작은 구형 냉장고를 쓰고 계시고, 아마 요즘 3,40대도 본 기억이 없을 꽃그림 그려진 유니버설 브랜드의 밥솥을 쓰고 계신다. 전기포트를 지금까지도 사보 신적 없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알 커피와 커피크림, 설탕을 조제하셔서 커피를 타드신다.

당연히 침대는 없으시고, 주무실 때 이불을 펴고 또 기상 시에 이불을 개키시면서 생활하신다.

머리 파마 값도 아까우셔서 늘 생머리 커트 머리를 유지하신다.(하지만 이쁘게 드라이하시고 연하게 화장도 늘 하고 다니신다)

당신에게는 이렇게 아끼고 절약하시는 분이 다른 이에게 선물할 때는 최고품질의 상품으로 마음을 표현하신다.

(사실 여기까지는 너무 감사한 나의 감동받은 마음을 표현하려고 적은 내용이다)

감바스를 해드렸는데 이가 별로 안 좋으시다며 조금만 드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아이들 수업받을 시절에 우리 집에 방분하신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해드린 치즈 스파게티를 맛있게 드시고 집에 가서 아이들 만들어 줬더니 아이들 [고등학생 때]이 너무 좋아했다며 감바스 처음 먹어보는데 배워서 가족들에게 해주겠다 하시며, 민주 엄마는 배울게 많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정말 보고 싶었고, 궁금했다고 하신다

그동안 몸도 아파서 병원을 다녔는데... 이유도 없이 아팠다고 하셨다.

지금은 그만그만 괜찮다 하시며 잘 지낸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쉬었다 수업해야 하니 이제 그만 가보겠다며 일어서시는 거다. 괜찮다고 좀 더 계시라고 해도 얼굴도 봤고, 잘 지내는 거 봤으니까, 앞으로 자주 보자며, 수업해야 하는데 피곤하면 안 되니까 가신다고 일어서셨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하고 댁으로 가셨다.

그분이 가시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뭐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진심으로 나를 보고 싶어 하시고, 생각해주시는 분께 나는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혹시 무슨 부탁이 있으신 건지? 아님 청첩장이라도 건네려는 것인지? 이렇게 생각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냥 아껴주시는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20년 전에도 그분께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배웠다... 생각했는데 이번에 또 한 번 배우고 반성했다.

그 이후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나는 카카오톡으로 케이크 기프트콘을 그분께 보내드리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저 잘했죠? 이제 저도 그분께 배운 것처럼 진심을 알고 진심을 표현하면서 후회 없이 지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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