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제대로 말하는 엄마가 될 거야.
차분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시끄러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도 아주 잘했을 때도,
"그만해, 이제 안돼.", "정말 고마워. 멋진데?"
이 정도의 말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때에 따라 리액션이 훨씬 커지기도 하지만, 활기찬 엄마라고 보긴 어렵다. 좋게 표현하자면 다정하고 조용한 쪽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무심해 보일 수 있다.
내가 괜찮은 엄마일까?
나는 평화를 지향한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대체로 성공하는 편이다.
"괜찮아요."
"네, 상관없어요."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만든 평화는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결과와 상관없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걸까.
한 번씩 ' 더 이상은 노력하고 싶지 않아.', '다 그만두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화와 다정함 아래 놓인 것은
두려움, 그리고 안전감의 부재였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내가 있는 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동시에 환경에 비해서는 잘 자란 편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잘 자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했던 일들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무섭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은 속으로만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의 자리에 오르자 내 습관은 아기였던 내 아이에게 꽤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즉, 갈등과 수없이 만날 예정이다.
게다가 나 역시 지쳤다. 지금이 좋은데 힘들다.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지금 이대로 어느 정도 만족하는데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유지하려던 힘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가 유지하려던 게 뭘까?
사실 남편도 아이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있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불협화음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애쓰는 게 된다.
원래 사람은 살아가면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또 그 안에서 성장한다. 나도 다 안다. 그런데도 갈등의 순간에는 생존에 '위협'으로 느낀다.
평화를 위해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무는 내 모습이 이제는 아이의 눈에도 보일 것이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이런 건 이제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엄마, 표정이 왜 그래?'
아이가 물을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나에게 가족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필요한 건 아닐까.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많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아이와 남편은 자기 방식대로 잘 살아갈 것이다.
내가 힘들다고 해서 모두 내버려 두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저 요청하지도 않은 발버둥을 혼자 치는 건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서로 도우며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가족이 되려면, 내 마음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내 아이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의 나와는 다르면 좋겠다. 상황에 맞추기 위해 자기의 욕구나 마음을 습관처럼 뒤로하지 않기를.
아이의 욕구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때에 따라 가장 나중일 수도 있겠지만, 늘 그래서는 마음이 건강하기 어렵다. 내 습관을 아이가 은연중에 배우지 않도록, 우리 가족을 믿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당신 생각도 좋은데, 난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네 말도 들어주고 싶지만, 엄마는 이거 먼저 해야 돼."
나도 모르게 조용한 평화에만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진짜 마음을 말해봐야겠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고,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