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지트는 차 안이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고,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지 않으며, 스피커까지 빵빵하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소행성의 유일한 국민처럼 나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왕이었다가, 인정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다가, 또 회피하다가 가끔은 어린 왕자처럼 장미를 바라본다.
출퇴근길, 차 안은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볼륨을 키우면 간 적도 없는 클럽이 되고, 자신 있게 삑사리를 내다보면 코노보다 낫다. 오디오북에 감동하면 거리낌 없이 훌쩍거린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도 나오는 날엔 홍조도 마음껏 띄운다.
처량해도 제일 좋은 건 마음껏 우는 거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몇 번쯤 그렇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지켜온 비합리적 신념을 버리기 어렵다. 아지트는 늘 비밀이 보장되기에 혼자 시원하게 엉엉 운다. 그러고 나면 단순하게도 자기 연민과 개운함이 차례로 나를 관통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도 꽤 오랫동안 뚜벅이였던 나는 차를 사기를 미루곤 했다. 핸들을 잡고 전방을 주시하면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어딜 가든 휴대폰과 책 덕분에 즐거운데 운전을 하면 힘들지 않을까.
그치만 뭘 모르는 시절의 귀여운 생각이었다. 대중교통 이용이 적어진 지금은 혼자가 된 차 안에서 귀와 입이 더 바빠졌다.
청소년 시절엔 '아지트'라는 말이 멀리 있는 낭만처럼 느껴졌다. 외래어인 데다가 집 말고 또 어디에 '더 편히 마음 터놓을 곳'이 있단 말인가. 우리 집은 편하지 않았기에 아쉬웠지만 어쨌든 그런 건 외국영화에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겨우 차 안이 아지트라니 좀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만족한다. 왕국의 환경을 위해 쓰레기는 치워야겠지만.
아쉬워도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하면 일부러 곧바로 내린다. 내리기를 주저하거나, 한동안 내리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마음껏 누리고 미련 없이 아지트를 떠나는 요즘이 평범에 가까워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