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소설] 크리스마스 케이크

by 여지나


크리스마스는 정신없이 휘황찬란해서 싫다. 저녁 출근길,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를 지날 때면 상점 밖으로 나와있는 온갖 것들이 번쩍인다. 오너먼트부터 각양각색의 트리, 산타나 루돌프, 천사의 형상들을 할인하고 있다. 외국 사람이 태어나든 말든 무슨 상관인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만 기다린 것처럼 들떠 보인다. 지금 일하고 있는 보쌈집도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라 테이블마다 웃고 떠들어댄다. 물론 그 밝음이 나한테까지 오진 않지만.


"여기 음식 언제 나오는 거예요? 벌써 1시간 넘게 지났잖아요."


처음엔 손님의 말을 직역하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


"한 시간은 아니고요, 20분 지났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가 사장한테 된통 깨졌다. 손님은 몇 분 지난 지 물어본 게 아니라고. 그럼 그냥 빨리 갔다 달라고 하든가. 이젠 정답을 안다.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등학생이다. 수능까지 끝났고 대학은 수시 합격. 안전한 학교만 썼으니 특별히 기쁘진 않다. 어쨌든 12년간의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났다.


좀 쉬고 싶었지만 엄마가 준 카드가 바닥을 보여서 보쌈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친절한 사장님 부부는 알바 첫날부터 틈틈이 먹으라며 간식까지 사다 주셨다. 쿠키에 초콜릿까지 있는 걸 보고 감동했으나 언니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듣곤 정체를 알게 됐다.


"맨날 애매하게 퇴근시키면서, 저거 살 돈 있으면 수당이나 제대로 주든가."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밖엔 대기 줄이 한창이다. 카톡으로 대기 순서를 알려줄 텐데 몇몇 손님은 연락이 안 된다. 안에 있는 손님들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밖의 손님들은 잔뜩 화가 나 보이고. 사장님은 생애 첫 알바를 하는 내가 탐탁지 않은 눈치다.


정해진 근무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마감을 했다. 식당 유리 벽 밖의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오늘이 영하 몇 도라고 했더라. 춥긴 추워 보인다. 사장님 부부는 늦은 시간까지 고맙다며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많이 힘들었을 텐데 수고 많았어요. 이건 내 선물.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먹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여자 사장님이 한 명씩 불러 케이크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젠 나도 속지 않는다. 매일 애매한 시간에 끝내고, 야근 수당 대신 간식으로 퉁치려 한다는 걸. 그렇지만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감사한 척했다. 이 시간에 누구랑 먹으라는 거야.


보쌈집이 있는 번화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역을 나와 걷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풍경은 더 이상 눈부시지 않고 편안했다. 아니 합리적이고 깔끔했다. 밤은 원래 캄캄한 법이다.


내 크리스마스는 대체로 최악이었다. 누가 아프거나, 싸우거나, 우울했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도 더러 그랬지만.


오늘은 그러고 보면 괜찮은 편이다. 케이크가 있는 크리스마스도 얼마 만인지. 오늘은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같이 먹기엔 딱 좋은 크기인데.


내 생일인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엄마는 꼭 날 사랑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전부 내 생일로 해두었다.


문틈이 벌어지자 짙은 갈색으로 얼룩덜룩한 강아지 두 마리가 쏟아져 나와 정신없이 반겼다. 빈 방엔 아무도 없었다. 가을쯤이었나, 엄마가 외롭지 않냐며 안겨준 어린 생명들. 자식도 제대로 안 키우면서 개를 두 마리나 키우라니.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집을 나갔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집을 나갔고. 우리 집은 나만 나가면 아무도 없는 거였는데, 이 녀석들 덕분에 완성되지 못했다.


몸을 눕히자 두 털 뭉치가 작은 혀를 내밀어 경쟁하듯 얼굴을 핥아댄다. 사료냄새는 별로지만 밀어내지 않았다. 부엌 앞에 하나, 화장실 앞에 하나, 작은 똥과 오줌을 실수해 놓았다. 피곤해도 밟기 전에 닦는다. 내 케이크만 있는 게 미안해서 들어오기 전에 산 개껌을 하나씩 주었다. 북실한 꼬리를 흔들며 개껌을 물고 이불 쪽으로 달려간다.


예전 같으면 먼지가 잔뜩 낀 몸을 씻지도 않고 자겠지만, 이 녀석들에게 세균을 옮길 순 없다. 신발장 바로 옆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의 뜨끈한 물줄기를 맞으며 몸을 씻었다. 개운하다.


물기를 대충 털고 TV를 켰다. 크리스마스와 관련 없는 몇 년 전 예능을 골랐다. 웃기기 위해 독설이고 외모비하고 가리지 않는 옛날 방송. 아무 날도 아닌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냉장고와 수납장 옆에 끼워둔 작은 밥상을 꺼내, 네 개의 다리를 폈다. TV 앞에 둔 채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싫고 분한 척했지만 실은 궁금했다. 맛있어 보였다.


설탕이 얇게 코팅된 과일, 그 아래 생크림이 겹겹이 쌓인 케이크를 젓가락으로 길게 잘라 집어먹었다. 과한 달콤함이 싫지 않다. 개껌을 다 먹었는지 강아지들이 내 곁으로 와 헥헥거린다.


"안돼 이건. 너희들 배 아파."


말해도 못 알아듣고 낑낑댄다. 3월부터는 집에서 버스로 갈 수 있는 대학에 간다.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장학생이니 생활비 정도만 벌면 될 것이다. 버려둔 건지 선물한 건지 모를 이 두 마리와 생각보다 괜찮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크 가까이 코를 킁킁대는 두 마리가 별수 없이 사랑스럽다. 제법 애절하게 울며 앞발을 올리는 녀석들을 불렀다. 그 순간, 케이크를 사이에 둔 녀석들의 귀가 움찔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찰칵.


새하얀 케이크 위 빨간색 필기체의 장식과 까맣게 반짝이는 네 개의 눈이 잘 어울렸다.

어쩌면, 내년엔 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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