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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볼펜과는 다른 만년필만의 멋.

작년까지 제가 회의에서 사용하던 펜은 제트스트림 3in1이었습니다. 검빨파 펜을 돌려가며 쓰는 재미가 있었죠, 그러던 찰나 만년필을 접하게 됩니다. 집에 있었던 만년필은 라미社의 사파리 만년필로 처음 만년필을 접하는 초심자가 사용하기 아주 적절한 만년필입니다. 언제 구입한 지 기억도 안나는 펜이었는데 만년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만년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앞선 글에서 자세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줄 요약하면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와 팟빵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됨"입니다. ㅎㅎ


오늘의 일지에서는 만년필을 아름답게 느끼는 저만의 생각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라, 저 사람은 저렇구나 참고 정도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곁다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아름다움의 어원은 의견이 분분한데요 하나의 설은 한 '아름', 한 사람이 껴안을 수 있는 양이자 두 팔로 안을 수 있는 가득 찬 상태를 의미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만년필은 한 손에 쏙 들어가니 한 '줌'이 되겠네요, 그러면 만년필은 줌다움(?) 일까요.


사실 '美'에 접근은 철학적 문제입니다. 논의하기 어렵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만년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요소를 몇 가지로 단순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1. 아름다움의 요소




1) 기능적 아름다움


만년필의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아주 단순한 몇 개의 부속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만년필이 잘 써지게 됩니다. 잉크를 담는 통(컨버터, 카트리지), 잉크를 담는 통에서 잉크를 촉으로 보내고 이를 머금는 통로(피드), 잉크와 종이가 만나는 부분(닙), 이것을 감싸는 부분들(캡, 배럴), 사람이 잡는 부분(그립)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구조라서 더 더하거나 뺄 부분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기계적 아름다움이 아닐까 합니다. 아래는 생택쥐베리(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왕자의 그 생택쥐베리입니다.)의 격언인데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디자인이 완성된다는 것처럼 만년필의 기계적 아름다움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에서
완벽함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때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입니다.

- 안토니오 드 생택쥐베리 -



quote-you-know-you-ve-achieved-perfection-in-design-not-when-you-have-nothing-more-to-add-antoine-de-saint-exupery-52-88-88.jpg 생택쥐베리의 격언 (출처: https://www.azquotes.com/quote/528888)


아래 링크는 닙 분해과정입니다. 분해된 파츠들을 보면 부속이 몇 개 안 됩니다.

https://mazurkapens.wordpress.com/2014/09/27/changing-fountain-pen-nibs-six-easy-steps-to-success/


만년필은 기능적으로 단순합니다. 원리를 한 줄 정리하면, "모세관 현상으로 작동하는 펜"입니다. 유사한 기능을 지닌 펜이 같은 시기에 있었습니다. 스타일로그래피 펜인데요 촉 부분이 만년필에 비해 이쁘지 않죠? 만년필은 금이 블링블링 한데 말이에요. 결국 만년필이 시대의 대세가 됩니다. 기능적인 단순함이 또 다른 만년필의 아름다움이자 조형적 아름다움도 만년필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https://vintagepens.com/stylos.shtml



2) 조형적 아름다움


만년필 닙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무늬가 있습니다. 또한 만년필 모양을 보면 균형과 비례를 신경 써서 만듭니다. 이쁜 게 잘 팔리기 때문이죠, 아래는 펠리칸 m200 만년필 닙(스틸)인데요 저렴한 닙은 비교적 심플합니다. 촉의 맨 끝인 이리듐 포인트를 보면 균형이 딱 맞습니다. 조형적으로 균형 있게 이쁘죠

KakaoTalk_20240527_235219387_21.jpg 펠리칸 m200 스모키쿼츠(f촉)

만년필 몽블랑 명작인 149의 닙을 보면 클래식하게 이쁩니다.

20240812_213638.png 몽블랑 149 촉(출처: 몽블랑 홈페이지)

만년필은 조형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닙의 모양, 캡의 모양, 바디의 모양이 잘 구성되어야 이쁜 하나의 만년필로 팔리게 됩니다. 결국은 크기와 모양이 조화롭게 아름답다는 것이죠. 덧붙여 색상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몸통 색의 만년필이 생산되고 있어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20240813_145520.png 세일러 시리키오리 만년필 시리즈(출처: 블루블랙 펜샵 홈페이지)



3) 예술적 아름다움


만년필이 기능적, 조형적으로 완성되면 역시 사람은 더 높은 제품을 원하길 마련이고 수요에 따라 생산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만년필을 예술품 단계까지 올리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브랜드로는 몽블랑이 있죠, 몽블랑 등 몇몇 제조사에서는 예술품에 견주는 만년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몽블랑에서 생산하는 888 시리즈, LE(limited edition), SE(special edition) 등이 있습니다.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보석, 귀금속을 활용하여 만년필을 제작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사치품의 역할을 수행하죠. 만년필의 작동 원리와 기능은 저가 만년필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만년필의 촉감, 무게에 따른 밸런스가 필감에 영향을 미치며 공산품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운 만년필이 되게 됩니다.


아래 링크는 개당 천만 원이 넘는 만년필들입니다. 몽블랑에서 888개 한정으로 나온 만년필 시리즈 전부(~2022년)를 한 번에 판매하는 ebay 링크인데 눈호강하기 좋습니다. 예술적인 아름다움, 귀금속으로써의 만년필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물론 저는 없습니다. ㅎㅎ 그러나 이러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애호가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부분이죠.

https://www.ebay.com/itm/204337060062


사실 6천 원짜리 만년필인 프레피와 1천만 원짜리 몽블랑 888이 작동하는 원리는 동일합니다. 서로 다른 것은 재질과 한정된 판매량 정도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예술적 아름다움을 지닌 고가의 만년필은 소장품 성격이 강한 제품입니다.






2. 만년필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위에 장황하게 적었으나 아름다움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쁜 만년필" 그게 다입니다.

"이쁘다"는 정의 안에 본인의 관점이 녹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렴해도 이쁠 수 있고, 오래되어야 이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특별한 본인만의 추억이 있는 펜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겁니다.


본인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만년필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 기간 동안 본인이 관심을 지니는 요소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만년필에 느끼는 아름다움의 요소와 비중이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처음 만년필을 접했을 때 만년필에 만족을 느끼는 요소가 외관 90%, 가격 10% 였다면, 어느 정도 사용한 이후에는 브랜드 스토리 30%, 외관 30%, 필감 40%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그 이후에는 환금성 40%, 소장가치 60%가 될 수 도 있는 것이고요.


그럼에서 모두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혹은 명기라고 하는) 만년필은 만년필 사용자 또는 애호가라면 한번 경험해 보길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이 만년필을 사용하면 할수록 여러가지(만년필 역사에서 살아남은 펜에 대한 경의, 가격에서 오는 후광효과, 무게의 밸런스에서 느끼는 필감의 차이, 닙의 크기에서 오는 필감의 변화 등)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몽블랑 149, 펠리칸 m800, 파카 듀오폴드가 있죠. 시대와 시간을 관통하여 오롯하게 자리 잡은 제품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시계나 차, 가구가 그렇듯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만년필은 최고 수준(예술품의 전단계, 기능+조형적으로 완성된 제품)의 제품을 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상태 좋은 중고를 구하기도 쉽고, 조금 무리해서 새것을 구입해도 충분히 접근 가능한 수준입니다. 고등학생도 용돈을 모아서 한 번에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평생 그림만 보고 기다리기만 하거나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취미랑은 다른 부분이죠. 시필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오프라인 시필이 가능한 펜샵(베스트펜, 블루블랙, 펜샵코리아, 펜카페 등), 몽블랑은 146만 시필이 가능하지만 부티끄를 통해서 시필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있으시거나 지나치실 때 한번 몇 줄이라도 써보시면 만년필 세계가 넓어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3.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사실 만년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많은 분들이 사용하셨으면 좋겠지만, 성격상 쓰기 어려운 분들도 계십니다. 물건을 험하게 쓰거나 귀찮음을 싫어하시는 분들이죠, 그러나 본인이 예민하다고 생각하거나 손으로 무엇을 하기 좋아하시는 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 있으신 분, 혹은 그러한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만년필 취미를 추천합니다. 만년필 취미는 매우 안전하며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물론 많이 구입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요)


잔잔한 성품을 지녔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행복하신 분들께 딱 입니다. 저도 약간은 그러한 성향이기에 이 취미의 장점과 매력을 잘 느끼고 있습니다.


만년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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