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나비 봤어? 방금 아버님 모신 자리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 날아갔는데......"
"아 그랬어요 형님? 제눈에는 안보이던데. 아버님이 나비가 되셨나 보네요."
노닐던 구름이 시린 가을 하늘 끝으로 기울고, 가슴속으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앉는데. 문득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스미듯 사라진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왜 그랬을까.
입안의 혀처럼 살갑게 대해드리며 애틋한 사랑을 받았었는데 잠깐 미워했던 시간이 사무친다.
시ㆍ집ㆍ살ㆍ이
수년 전 추석 명절날, 시댁 조카사위 조카며느리 어린 손주들까지 다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큰 시누이가 그녀에게 삿대질을 날렸다. 자주 찾아뵙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심술 맞은 작은 시누이는
"옳지 잘한다 더해라."
라며 큰 시누이를 부추겼고 난데없는 봉변에 황망한 그녀는 그동안 누르고 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하려는 순간 시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마른침을 삼키며 돌아서는 그녀의 어깨가 흔들린다.
결혼 시작과 동시에 꼬박 6년을 시부모님을 모셨고, 하루에 밥을 차리는 횟수가 작게는 일곱 번이요, 많게는 아홉 번이라. 주말은 단 한주도 안 거르고 시댁 형제들이 늘 다모였고, 아홉 남매나 되는 시 외가댁 식구들도 쥐방구리 드나들듯 하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몸이 고되었으면 유년기에도 안 났던 종기가 시커멓게 엉덩이 살을 파고들었다.
모든 게 숙명이려니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다
어줍잖게 청약한 아파트가 당첨되면서 예정에도 없었던 분가를 하게 되니, 하루하루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 총중에도 두 아이 손잡고 이십여 년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시부모님을 찾아뵈었지만, 그날 그 삿대질엔 누구도 그만 하라는 말 한마디 없는 공범자들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완벽하게 아웃되는 자신을 보았다.
그 서운함과 섭섭함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자다가도 불쑥 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가장 예쁜 셋째 딸이라며 살가웠던 분이 보여 준 그날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큰 시누이의 삿대질에 버금가는 충격과 절망이 반복되니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울 만큼 심장에 압박이 가해졌다.
마음을 잡아보려 해도 달아나는 마음은 야속하기만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행보가 두 주에 한번 때론 3주, 한 달이 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 평생을 배려와 헌신 나눔과 베품으로 살아오신 분이었지만, 내피가 섞인 자식한테는 상황 관계없이 팔이 안으로 굽었던 걸까. 발가락 사이사이를 비집고 무좀약을 발라드리고 손발톱까지 깎아드리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의무감으로 대하는 자신이 싫었지만 마음을 붙든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생전 안 하던 말대답까지 하는 자신에게 움찔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엔 가족이 아닌 며느리였었나 섭섭하고 또 섭섭했다. 꼭꼭 접은 마음인데도 타고난 본성은 감추기 어려운 건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지극정성이란.
예고도 없이 시아버지에게 파킨슨병, 고혈압, 당뇨, 신장질환, 심장비대증 등 대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병들이 한꺼번에 습격했고, 종국에는 췌장암 말기 진단까지 받게 되니 한순간에 스러지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후ㆍ회
어느 날 무엇에 이끌리듯 그녀는 불쑥 시아버지를 찾아뵙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버님 며느리 노릇 이젠 그만하고 싶어요. 저는 모진 세월 속에서도 묵묵히 저를 지켜주시는 아버님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저는 가족이 아니라 그냥 며느리였어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 같아. 내 느낌이 그래. 내가 이젠 아무런 힘이 없어."
동문서답하듯 답하시는 분께 또 속이상해
마치 작정하고 정을 떼듯 매정하게 일어서 나왔던 그날, 못난 후회가 명치끝을 치받는다.
망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승화원에서 화장을 하고, 곱게 빻은 유골함을 들고 선산으로 향하는 길. 차창밖으로 스치는 가을 풍경이 낯설기만 한데 떠나는 분의 마음은 왠지 가볍게 느껴졌다.
일찌감치 모든 걸 내려놓고 비움으로 생을 마감하신 분의 마음은 진정 가벼울까. 까만 상복 저고리 섶을 여미는 손끝으로 미어지는 마음이 서럽게 달려든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 둘 밟고 오르니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에 춘천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명당 중 명당이다.
生과 死는 종이 한 장 차이도 안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였나 보다. 이승에서 저편으로 가는 무지개다리는 삶 속에 내재된 무거움을 끊임없는 성찰로 털어버리고 나비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소풍길 풍경일까.
오랜만남, 짧은 이별...... 인생은 그렇듯 잠시 스치는 찰나의 시간인가보다.
돌아오는 버스 차장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다시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시아버지 부음을 전해 듣고 목이 메어 말씀을 잇지 못하던 친정 엄니와 전화 통화를 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풍경이 후회의 색으로 덧칠되기 전에 맑고 투명한 수채물감을 사 두어야 겠다.
2020.10.23. 새벽 5시 40분경
현세의 소풍을 마치고 새로운 소풍길에 나선 시아버님!
善人으로 배려와 존중 베품 나눔 절제를 몸소 실천하셨고 끝내는 비움의 삶으로 자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셨으니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현세의 소풍은 끝내셨으니 천국에서 어머님 만나 편안하게 쉬시며 행복한 소풍길 다시 시작하시길 소망합니다.
아버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주님의 품안에서 편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