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나가 '툭' 떨어져 휘청거리니 지나던 바람이 어깨를 내어준다. 짓궂은 햇살은 몸을 던져 호수 속 잉어의 알록달록한 몸까지 투영한다.
가을 한 잎 주워 물고 장난질 치던 오리는 물속에 머리를 꽂고 자맥질한다. 핑크 뮬리와 갈대숲을 바람이 훑는다.
지난겨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에서 커피를 마시다 창가에 앉은 연인의 모습을 흘긋거렸던 생각이 났다.베이지색 코트를 어깨 위에 걸치고 청귤색 자켓을 입은 남자랑 마주 보며 웃던 여인, 눈가의 주름마저도 우아했던 여인은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맡았어요."
"아니요 내가 먼저 가방을 뒀다고요."
중년의 두 남녀가 실랑이를 벌이니 그 틈새를 비집고 여인의 일행 둘이 자리를 차지해버린다.그도 그럴 것이 통유리 밖 호수 안에 담긴 만추의 아름다움은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을 듯 치명적이었음이다.
산책을 접고 들어온 카페 풍경이야기다. 정면의 통유리 양 옆 벽면에 묵직한 유화 그림 두 점이 걸려있고 구석엔 낡은 통기타가 무심하다. 두툼한 원목으로 된 두 개의 원탁은 호수를 바라보고 양쪽 벽면으로 붙은 몇 개의 테이블들은 흡사 주인공을 빛내주는 갤러리석 같다.
원목 탁자 위에 올려진 와인병에 햇살이 부딪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유려한 색채의 신비가 펼쳐진다. 무릎담요를 덮고 어깨 위엔 스웨터를 걸쳤다. 창가에 달려드는 햇살을 쬐며 천천히 와인 한 모금 입에 가둔 채 향을 음미하다 위장으로 '툭' 던져버린다. 붉은빛 액체가 쪼끌쪼글한 위벽을 회오리치듯 한 바퀴 훑고 다시 코끝으로 향을 퍼올릴 즈음 치즈 한 조각을 물고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잠시몽롱함에 빠졌던 고요함을 흐트러뜨리는 소리. 내 앞의 의자를 질질 끌고 가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며 영화는 끝나버렸다. 사계의 출렁거림에 마음을 놓치고야 말 로맨틱한 정경을 마주할 수 있는 그 자리를 탐내느라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시선은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려있다.
친구랑 정말 오랜만에 해후다. 반가움을 엇나간 언어로 표현하는 굴곡짐. 그 안으로 햇살 한 줌이 파고든다. 내 안에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살았었나. 나를 너무 꽁꽁 동여매고 살았던 건 아닐까. 무거움에 찻잔만 기울인다. 나이 들수록 부드러워지고 배려가 넘치며 한없이 넓고 넓은 바다가 되는 줄 알았다. 사소함이 상처가 되고 덧이 나니 점점 움츠러드는 걸까. 단순하고 심플한 줄 알았던 나는 정작 까탈스러웠던 걸까.
기울어진 한낮의 그림자는 카페 안에 음영을 드리우고 자리를 탐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사라진다. 파란 물을 뚝뚝 흘리던 하늘로 가을 낙엽이 몸을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