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오길 참 잘했어

by stellaㅡ별꽃


인생은 늘 변수의 연속인가 보다. 예상치 않은 일들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으로 인해 발목이 잡히기도 하고 점프해 성장하는 동기부여도 된다.


나 역시 지금은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안정된 형태의 삶에 안착되었지만 스물다섯 이전과 이후의 삶은 격변기 중 최대 격변기였다.


시부모 모신다는 일은 늘 보아왔던 엄마의 모습에서 비친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져 중매쟁이가 시부모 모시고 어쩌고 하는 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덜컥 결혼을 해버렸다.


허약하다고 늘 부모님과 형제들 보호 속에 라면 한번 안 끓여먹고 스타킹 한번 빨아본 적 없 결혼한다고 올케언니는 시집가면 쫓겨날 거라며 귀여운 악담을 했다.

신혼 첫날부터 시댁 식구들 속옷 빠는 일이 주어졌고 손이 부르트도록 주방일과 평수 넓은 단독주택 청소, 그리고 분가하기 전 6년 동안 정말 한주도 안 거르고 찾아오는 출가한 시누이들과 동서네 가족, 심지어 시누이들은 명절날엔 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챙겨 시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는 일이 의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시집살이까지 시키는 시누이들. 나는 그저 이름 없는 여자였고 시댁 식구 뒤치다꺼리가 전부인 할을 하며 심장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시집살이에 통달할 즈음엔 사실 막을 내리긴 했다. 하하)


석 달 열흘 읊어도 다 못할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긋지긋하고 우울했던 날을 상기하려 함이 아닌 내 인생 찾기에 돌입했던 시간을 돌아보려는 것이다.


신혼초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돋보기로 찾아도 당최 보이지 않는 남편, 지나가다 우연히 던진 아파트가 당첨되며 예정에 없던 분가를 하게 되고 나는 남편 해바라기를 비교적 일찍 접고 아이들과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청사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깊은 우울감에 나락으로 치달은 적도 있었지만 초긍적사고를 반복 훈련하며 인생이 너무 순탄하면 발전이 없다는 ㅡ그리하여 탈출구가 필요했고 무엇이던 일단 반대하고 보는 남편과의 기싸움이 싫기도 하고 지치고 힘들어 포기기를 여러 번ㅡ이러다 나는 그저 세상과 격리된 집안일 잘하는 이름 없는 여자로 돈걱정이나 하며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지켜주지 못하고 살다 갈게 뻔하단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고, 다섯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두고 맞벌이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두 아이가 원하는 삶을 지켜주고 싶었고, 두 번째는 세상 밖으로 나를 내보내 잠재되어 있는 내면을 꺼내보고 싶었고, 세 번째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싶었다.


공부 꽤나 잘하던 두 아이가 원하는 꿈은 조상 때부터 그때 당시까지 관습처럼 내려오는 판검사 의사 교수가 아닌 만화가 또는 가족들 기대와

상반되는 분야였다.

중1년이 되던 날 꿈이 무어냐 묻는 내게 큰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래 모습을 밀도 있고 세세하며 구체적으로 글로 기록하며 키워왔던 만화가의 꿈을 조심스레 꺼내보였고 솔직히 당황은 했지만 나는 그 꿈을 적극 후원했다. 백방으로 정보를 얻고 상담받기를 1년여~~ 집안 반대와 핍박은 상상 이상이었고 중간에서 나는 시댁 식구들과 남편과 싸워주고 차단하는 전사가 되었다. 큰아이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의 키를 잡고 항해 중이다.


막내 역시 하고픈 일을 딱히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뒤늦게 큰아이가 권해본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큰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수입이 없는 온전한 작업시간이 2년여~~ 잘 나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종종 회의감에 젖기도 했고 때론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내 눈치를 보곤 했다.

물론 시댁 식구들과 남편은 암묵 혹은 표현으로 부담스러운 압박을 가했지만 나는 향후 십 년 후 누구보다 안정된 직업이 되어 있을 거라며 지나친 간섭을 차단 또 차단시켰다.


"암튼 울 엄니! 나는 친구들 보며 조바심치는데 엄니는 되레 쿨하셔~~ 백 년 인생에서 2~3년이 뭐가 대수냐고 잘 봐줘서 나도 맘 편히 작업할 수 있었지. 돈 벌면 빨간 차 사드릴게."

막내는 지금 클레이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약 중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저는 작가가 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 덕분인 것 같아 감사해요. 숨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시간을 견디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 쓰다 하루 두세 시간 자고 출근해도 행복했고, 공모전에 당선되고 수필집을 냈고, 지금 여러분들과 작가와의 대화도 하고 있어요.


제가 만일 처음부터 편안하게 지냈다면 사진 찍고 여행하고 글 쓰는 일에 몰입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편안하게 여행하며 지내더라고요.


두 아이에게 늘 했던 말이 있어요. 건강한 반대 세력이 있어야 더 크게 성장하는 법이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고모, 삼촌 다들 더 열심히 반대하시라 그래. 아들들이 보란 듯 성공하면 되는 거니까."

시대가 바뀌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고 언텍트 온텍트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는 지금 두 아이는 일찌감치 그에 맞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다가는 게 맞아. 내가 자식 입장이면 애기(며느리를 지칭) 같은 엄마를 만나면 참 좋을 것 같아."

돌아가시기 얼마 전 시아버님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걷다가도 또 아픈 게 인생이다. 내가 아파하는 게 무엇인지 난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묻지 않으련다. 다만 점프하기 전 아픔일 거라고......


지금은 세화 해변을 걷고 있는 중이고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는 말이 엄마로서 기쁠 뿐이다. 제 몫의 삶의 무게를 충분히 이겨나갈 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제주에 오길 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