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화가 났는지 단단히 벼른 바람은 양손으로 누르지 않으면 머리카락 한올 남기지 않고 죄다 뽑을 기세다. 숙소 밖 풍경이 너무 예뻐 나왔다가 훨훨 날아 빨랫줄에 널릴 뻔했다. 코로나가 스멀거릴지도 모른다는 강박증에 마스크를 이중으로 겹쳐 쓴 채 밀려드는 검푸른 파도를 바라본다. 우리가 묵는 숙소 뷰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이곳이 호주의 본다이 비치 해변과 비슷하다고 여름철이면 피서객으로 넘쳐납니다."
나는 사람 많은 여행지가 싫어 휴가도 남들 다 다녀오고 난 후 자투리 여름 끝을 선호한다. 이번 여행도 주중 출발 초중고생 방학하기 전의 시간을 고려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몇 번을 벼르고 무산되고를 반복하던 끝에 억지로 맞추다시피 한 시간. 현관문을 밀치는 순간 이미 셋 뒤로 일상은 멀찌감치 사라졌다.
결혼초부터 여행 가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 번이고 백번이고 매몰차게 거절했던 남편 덕분(?)에 취향도 여행 스타일도 비슷한 셋은 되레 우리 스타일의 느리고 느긋한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워워! 거절하면 내가 포기할 줄 알았나 보다ㅎㅎ. 그나마 백만분의 일쯤 꺾인 남편께서 이번 여행 역시 내년 봄 어쩌고 하는데 일단 다녀오겠다고 난 정리를 해버렸다.
세상 거칠 것 없이 당당한 찐 사나이 막내가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아픈지도 모른다. 그저 그게 무엇이냐고 묻기보단 툭툭 털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해 주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셋은 밤새워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엄마랑 자식이라기보다 소통이 잘 되는 친구에 가까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분명 있을 테지만 늘 내 엄마라서 좋고 부족한 게 아니라 넘치니 걱정 마시라는 말로 위로한다.
멍든 마음을 비비던 바람과 비틀어진 주인아저씨의 탄식이 한꺼번에 바다로 걸어 나갔고, 막내의 포효하는 외침을 안은 파도는 능청스럽다.
벼리어진 마음 한가운데로 불쑥 둥근 햇살이 들어왔고 콘티 작업을 마친 막내가 손을 잡아 끈다. 여행 도중 갑작스럽게 시나리오 작업이 들어온 큰애는 월정리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내 몸을 낚아채기라도 할 듯 몸을 돌돌 말아 올리던 바람이 탁 놔버리니 휘청 몸이 기울고 '챙그랑' 부딪히는 찬기운에 화들짝 놀라는데 우린 이미 세화 해변을 한참이나 걷고 있었다.
'아플 때도 있어. 지나고 보면 그게 그리 큰일은 아니야. 아프고 덧나고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세상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도 할 거야.'
친숙한 관계인 듯 멍뭉이 한 마리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바다는 눈부셨고 세화 해변엔 바람이 분다.
photo by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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