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냥이의 쓸쓸한 오후

by stellaㅡ별꽃



숨만 쉬어도 채가던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딜까. 가슴 한켠일까, 아님 오른쪽 뇌 귀퉁이일까.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블루함, 핑그르르 아찔한 달팽이관. 넷플릭스 영화를 봐도, 읽기 쉬운 책을 펼쳐도 집중은커녕 만 가지 잡념에 속이 다 울렁거린다.


벽에 등을 꽂꽂하게 붙이고 다리 하나를 가부좌 자세로 꺾어 반대편 허벅지 안쪽에 붙이고 허리 근력 강화 운동을 하다 묵주를 만지작거린다.

건강한 빵 만들기

사과, 당근, 아몬드, 계란을 갈아 크린베리랑 호두, 샐러리를 콕콕 박아 다이어트 빵을 만든다. 거실 통유리 너머 산자락을 움켜쥔 햇살에 시선이 꽂힌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2일간 재택근무(의무는 아니지만 건물에 확진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틀간 출근을 하지 말라는 공문이 느닷없이 떴다)중 하루는 마음 편하게 잘 지냈는데 이틀는 숨이 막힌다.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으로 돈이 아닌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 둘 늘고 있다.

요즘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를 많이 하는데 특이하게도 아주 뚜렷하게 구분되어 살아가는 달라진 일상의 모습을 본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재택근무가 반복되는 스트레스라지만 그것은 어쩌면 실직자가 해보고 싶은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시국을 한탄하며 켜켜이 화를 쌓는 사람, 소문도 없이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고 여전히 주식에 집중하는 사람,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누리는 사람, 생계 걱정, 월세 걱정하며 불안에 절어 사는 사람. 미래는 공부라며 머리맡에 책을 쌓고 유튜브 강의를 듣다 알고리즘에 낚여 헤매는 사람......

문득 한 지인을 생각하다 옛날 어른들이 그 집 식구들은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들이란 말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지인 부부도 그런 사람들이다.


사업에 크게 실패해 두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 마음먹고 철부지 아이 둘을 태우고 겨울밤에 한강으로 가던 중, 내복 바람으로 맨발에 양말도 벗은 채 혹한이 몰아치는 영등포 거리를 헤매는 어르신을 발견했고, 치매였던 어르신 집을 찾아드리는 과정에서 자신들 모습을 반추할 수 있었단다. 젊고 건강한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자산이고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 그것은 바로

'희망' 이었다

자그마한 빌라에 세 들어 살면서 남편은 개척교회 잡무를 봐주고 지인인 부인은 시간제 알바를 하며 네 식구가 180만 원으로 불평 없이 지냈다. 하지만 코로나의 급습은 냉정했다. 아니 비정했다.


집합 금지로 교인들 발걸음이 뜸해지다 보니 가난한 개척교회 살림은 더욱 기울고 눈치가 보여 월급을 못 챙기는 일이 다반사.
결국 남편은 실직도 아닌 실직자가 되었고 부인의 알량한 부업 자리도 사라졌다.
"저희 가족들은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아니 고추장이랑 참기름만 있어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냈는데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 걸까요.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코로나에 할 수 있는 건 없고 하루하루 생계 걱정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하소연하는 지인에게 딱히 해줄 게 없었던 나는 쌀 20kg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택배로 보내며 혹여 부담스러워할까 봐 공짜로 생겼으니 나누어 먹자는 말을 전했다. 코맹맹이 소리로 감사하다며 말 끝을 흐리는 지인의 마음이 명치끝에 부딪다.


미미하지만 문득 그 불안감이 내게도 찾아왔고 감정에 지배받는 게 싫은 나는 외출을 한다. 브런치카페가 아니면 맘 편하게 차 한잔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라 대부분 카페는 문을 닫았고, 문을 연 카페도 일부는 불이 꺼져있거나 한두 명의 손님뿐이다.

돌아설 때마다 등 뒤로 스산함이 달라붙는다. 영상으로 오른 기온 탓에 땅은 질척이는데 커피 한잔이 절박한 나는 마을 안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카페라 써붙인 화살표 반가워 따라 들어가니 한적한 숲이 나왔고 참나무에 앙증맞게 걸린 양말도 발견한다.
"겉보기랑 달라요. 안으로 들어오시면 따뜻하고 볼 것도 많아요."


카페 외부를 장식한 그림은 모로코 여행 중 아틀라스를 향해 달릴 때 거리에서 보았던 밥 말리의 초상화를 생각나게 했다. 카페 문을 민다. 꼼짝도 안 한다. 카페 창문으로 안을 엿보지만 공방처럼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내부엔 불이 꺼져 있고 목줄이 채워진 두 마리 냥이의 슬픈 눈빛을 보았을 뿐이다.

그 눈빛을 물리지 못하고 서성이다 카페 외벽 조그만 난간에 엎드려 햇빛을 쬐는 늙은 냥이와 눈이 마주친다.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리움의 시간이 늪을 만든 걸까. "냥이야~~"부르는 나를 외면한 시선은 덜렁거리는 그네를 향한다.

나의 불안한 하루도, 입에 풀칠이란 말이 실감 나는 지인의 절박함도, 늙은 냥이의 슬픈 눈동자도 결국 시절이 만든 교집합이다. 우리들의 시절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한 조각 햇살이 늙은 냥이 등에 내려앉는다.

Photo by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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