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실거리는 햇살품을 파고든다. 연휴에 집에 있기가 갑갑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선다. 울동네 아파트 바로 뒤가 관악산인 줄 처음 알았다.
하긴 지난겨울 이사해 동네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바쁘기도 했다. 잠깐 걷자 했는데 비로봉 전망대까지 단숨에 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내게 자신의 상처를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십여 년을 안 좋은 이야기만 하니 위로도 공감도 때론 부담스럽고 가끔은 싫기도 해 톡을 안보기도 하고 답을 안 하기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의 내면도 어쩌면 여행과 등산으로 포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풍경을 만나며 사물 속에 나를 접사 하는 작업.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준다.
때론 인간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심만을 위해 고집스럽게 전진하는 철벽 같다. 혹자는 상처 주는 말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한방에 '훅' 보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카톡 무시하는 건 예사로 알고 기분 나쁘다는 의사표현을 하면 동면에 들어간다.
사람이 변하는 건 힘들다는 말, 변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변하려는 시도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닐까. 소소한 것에도 방어적 태세를 취하니 마음의 담장은 가늠이 안된다.
나도 그럴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는 힘들지만 반추해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나의 거울이 되긴 쉽지 않다.
며칠 전 드라이브를 하다 우연찮게 일몰이 펼쳐지는 바다를 보았다. 먹구름 뒤로 얼굴을 반쯤 감추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던 태양은 잔물결 위에 붉은 보석을 쏟아붓는다. 그 바다에 봄이 기웃대고 윤슬은 치명적이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의식은 평온하다. 붉어진 몸을 스스로 부수어 낸 석양은 잔물결 위에 남겨진 윤슬이 사라질 즈음 훌렁 재주를 넘는다.
지금 이곳 비로봉 아래 바위에 걸터앉으니 그 또한 편안하고 느긋하다. 염치 불고 태양에게 나를 내어주며 다독이라고 말한다.
발아래 세상의 복닥거림은 이곳에선 참으로 부질없음이다. 그냥 햇살이 좋고 바람은 부드러우며 창공을 차고 오르는 새소리가 희망적일 뿐이다.
아무리 겨울이 모질어도 봄은 오고야 만다. 수다스러운 까치는 아마 봄기운을 물고 온 모양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 햇살만 쬐어도 괜찮아. 그러니 일어나 걸어 제발. 어두운 터널은 조금만 걸으면 벗어날 수 있어.'
나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아니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손에 들린 묵주가 벌써 몇 바퀴를 돌고 있다.
윤슬, 햇살, 바람, 새소리, 바다 냄새 등, 신은 사시사철 다른 기운을 보내 인간을 동굴에서 탈출하게 하신다. 인생은 마냥 봄일 수도 겨울일 수도 없다. 봄도 겨울 같고 겨울도 봄 같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수시로 계절을 넘나들 수 있으련만.
햇살을 쬐며 글을 쓰는 난 희망적이며 도전할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그러니 동굴에서 나와 햇빛을 좀 쐬며 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인간은 상처 받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