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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Jul 25. 2021

완판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꽃지게는 모두 시집을 갔습니다



서두에 무슨 호들갑이냐 하실 수도 있지만요:))


그날의 기억ㅡ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


"야야! 내 말대로 해. 정식 수순을 밟아서 작가가 되었고, 귀한 수필집까지 냈는데 출판기념회를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우리도 네 덕분에 그런 자리도 가보고 서로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잠자코 있어라 "


책을 출간하고 너무도 조용히 지내는 내게 모그룹 부사장으로 있던 친구는 더 들떠서 난리다. 속전속결로 출판행사 일정이 양재동 더케이 호텔로 결정되고 나니 재능기부를 해주시겠다는 분들로 넘쳤다.


기타 동아리분들의 연주와 노래로 흥을 돋은 후 시작된 행사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방송국 행사 못지않다며.

판소리 재능기부를 해주시겠다고 안성에서 올라오신 분 덕분에 행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축사를 해주던 친구는 발췌한 글을 읽으며 울었고 지난시절을 회상하는 나의 목소리는 덤덤했으나 마음은 묵직했다. 나는 그렇게 작가로서 당당히 첫발을 내디뎠다.

 


어디서 시작된 걸까


"댓글 다는 수준이 보통이 넘던데 산행기 한번 써봐요."

"이야~~ 그 재미없던 산행을 아름다운 한 편의 수필로 그려내다니......"

"책내도 되겠어. 열심히 한번 써봐요."

"작가님 저희 출판사랑 계약하시죠."

생각해보니 이렇게 시작된 거다. 댓글 잘 쓴다는 칭찬에 힘을 받아 산행기를 쓰기 시작했고, 산 탄다는 사람들에게 제법 유명세를 떨치게 된 산행기는 수백 명이 접속해 읽었다. 글을 읽고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을 걷고 싶은  꿈을 갖게 되고, 실제로 산행기에 용기를 얻고 합류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의 글 선생


이곳저곳에 쓴 산행기를 합치면 수백 편도 넘는다. 딱히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지라 내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울예대 문창과 모 교수님을 비롯한 출판인들과 수년 동안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을 걸으며 쓴 산행기에 대한 피드백을 교수님께 요청한 적이 있다. 처음엔 잘 쓴다 재밌다로 답을 회피하다, 상처 안 받을 자신 있냐는 물음에 자신 있다 답하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셨는데 내용인즉슨,


"아니 당신이 뭔데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해요!! 독자들 몫도 남겨둬야 할거 아녜요!! 그리고 당신은 누가 글 쓰는 법 가르쳐준다 해도 배우지 말아요. 글 버려."


순간 큰 깨달음이 왔고 이후로 나의 글은 180도 달라졌다. 내가 글쓰기를 한방에 배우게 된 촌철살인의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꽃지게 본문 삽화

공모전수필가 등단


공모전에 딱 두 번 응모했는데  '중봉 조헌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떨어지고 에세이 문예사에 덜컥 당선이 되며 수필가로 등단하게 다.

내가 쓰는 글이 문학적 가치가 높다  수필집 출판 계약을 하자 느닷없이 문상중에 있는 나를 찾아온 모 출판사 대표, 덜컥 계약을 하고 그때부터 꼬박 3개월을 글 쓰는데 전념했다. 그때 당시는(2016년) 친청엄마가 살림을 해주시던 때라 출퇴근과 글 쓰는 일이 전부였다.


하루 두세 시간 자는 게 다였고,  때론 꼬박 밤을 새우고 출근해도 피곤은커녕 책을 출간한다는 생각에 정신은 더욱 선명하기만 했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드디어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는데 갑자기 두 얼굴을 한 출판사 대표, 당황스러웠다. 더 당혹스러운 건 교정 본답 시고 내 원고의 절반을 말도 안 되게 고쳐버린 것이다.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의 장난처럼 여겨진 나는 그날 바로 원고를 회수했고 내용증명으로 마무리했다.(여기에 나열하지 못하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정신분열 수준의 횡포에 법적인 대안을 해둬야 한다는 모 출판사 대표님 조언으로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설득 그리고 출간


상처만 남은 나는 '내가 무슨 책을 낸다 일이나 열심히 해서 돈이나 벌자.' 생각했고 글 쓰는 것마저 그만두었다.

어느 날 시와 문화사 대표이면서 시인이신 박몽구 대표님은 책을 출간한 줄 알고 계간지에 홍보해 주신다며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그간의 사정을 들으시고는 황선생이 쓴 글은 세상에 내보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며, 끈질기게 설득해주셨다. 네 번째 만남에서 결국 원고를 넘겼고 일주일도 안되어 "아버지의 꽃지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출간 발이라고 처음엔 지인들이 사주시고 나눔도 하며 600여 권은 손쉽게 판매가 되었지만, 광고가 전혀 없이 이름 없는 작가의 책이, 그것도 수필집이 판매가 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그저 책 한 권 출간한 것으로 만족하며 지냈다.


그런데 첫 리뷰를 인스타그램 생면부지 타인의 계정에서 발견했고 그날은 종일 먹먹했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네이버 블로그에, 카톡으로,  인터넷서점에 하나 둘 올라오는 리뷰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 같았다.


두 번째 책은 언제 나오냐,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냐, 궁금해 죽겠다며 채근하는 몆몇 분들의 한결같은 성화(응원)에 두 번째 수필집 '단 하루의 마중'도 탄생을 했다.

첫 출간 후 5년 하고도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영광스럽게도 브런치  글을 정주행 하시는 독자분이 계셨고  '단 하루의 마중'을 주문하셨는데 '아버지의 꽃지게'는 품절이라며 아쉬워하시기에 소장본을 보내드렸다.


그리고ᆢ....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많은 양의 책을 내게 직접 주문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세 번째 책을 집필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한 달 넘게 다녀온 모로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름 있는 작가님들에게는 그깟 1,200권이겠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어도 완판 자체가  내겐 기적 같은 일이다. 물론 어딘가 못 찾은 몇 권이야 있겠지만  남녀노소 불문 많은 분들을 울리고 웃게 한  '아버지의 꽃지게'와 '단 하루의 마중' 생각에  이 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진짜 꿈은 여럿이 꾸는 것


돌이켜 보니 꿈은 여럿이 함께 꾸는 것이다.  나 혼자 의지로 해내겠다 생각했다면 지금까지도 출간은 언감생 꿈도 못 꾸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출간을 제의했던

 출판사 대표님과 일은 틀어졌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분 한마디가 글을 쓰는 큰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하니 신기하게도 인연은 고리에 고리를 걸고 이어지고 필요한 시점에 천사가 등장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과 함께 언젠가 나의 모로코 여행기는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

글을 쓸 때가 제일 행복한 나는 어쩌면 이 밤을 지새울지도 모르겠다.


나의 글을 세상에 선 보이게 해 주신 박몽구 대표님 은혜 잊지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완판 마무리를 해 주신 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항상 엄마의 인생을 살라며 응원해 주는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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