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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Dec 23. 2021

눈을 감아도 그대가 보여요

돋보기를 샀다


그는 누구일까

그녀는 어릴 때부터 왕눈이, 황소 눈, 토깽이(토끼)등등 적잖은 별명을 달고 살았는데 이유는 뻔하다. 눈이 너무 커서였고 친구들은 가끔 그녀에게 눈을 감아보라 하고, 눈알 크기를 재서 자기들 눈과 비교하  놀라기도 감탄을 하기도 했다.


"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최대한 크게 떠보세요. 아이쿠 깜짝이야. 세상 세상 이렇게 큰 눈알(눈도 아니고 눈알 이랬다)은 첨 봐요. 어허! 자칫 렌즈가 빠지겠는 걸."


여고 때 콘택트렌즈를 맞추러 안과엘 갔고 의사는 그렇게 말을 했다. 렌즈를 끼고 한 발자국 옮겼을 뿐인데 휘리릭 렌즈가 사라져 버렸다. 나이 드니 세월이 당긴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눈가 조금(너무 기대는 마시라. 아주 조금이니까) 처지긴 했지만 뭐 그럭저럭 볼만하다. 가끔 눈에 별이 박혔다고도 하는데  렌즈의 반짝임에 속은 거고  그나저나 그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이가 있으니.....,




친구와 수다

"어머 이게 얼마만이니 세상에. 그놈의 코로나가 친구도 끊고 다 끊을 모이다. 지금 안 만나면 또 기약이 없을 것 같아 나왔어. 서방님들도 다 잘들 계시지?"


"우우 난 정말 미치겠어. 재현 아빠 말이야. 아니 여 호르몬이 나오는지 저녁때마다 소파에 앉아서 드라마 보며 운다. 어제는 아예 흐느끼더라 흐느껴."

혜정이의 말에 다들 폭소를 터트렸고 너도 나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말도 마라 우리 남편. 어딜 가냐고 왜 그렇게 묻고 따지는지 몰라. 전화만 와도 누구냐 묻질 않나, 반찬은 뭐 할 거냐는 둥 사사건건 참견한다."

나이차가 나는 친구는 남편이 이미 정년을 맞은 사람도 있는지라,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고충을 토로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야! 야! 나는 어땠는  줄 ? 나는 내가 나한테 충격받았다니."

정옥이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왜? 왜?"


"글쎄 어제 지오 아빠가 샤워를 하고 옷을 벗고 목욕탕에서 나오는데 사람이 아니고, '삐리릭'(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언급을 피한다. 궁금하면 오백 원 들고 귓속말로 물어보시길ㅋ)으로 보이는 거 있지. 아우 나 어떡혀."


"어머 어머 너처럼 부부금슬이 그리 좋은데도 그래?"


"그려~~ 망했다니. 나 아는 언니는 더 충격적이여. 내 맘대로 생각이 안바꿔진다니께. 지오 아빠는 모른단 말여. 이 감정이 오래가면 어처켜(어떡해)."

사투리를 고수하는 정옥 말이 웃픈지 웃는 입 위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나는 너희들이 이해가 안 가.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는 게 얼마나 쉬운데. 하루에 눈뜨면 수시로 키스하고 사랑한다고 해봐. 사랑도 습관이야. 그거 몰라? 아내 하기 나름이에요~~~ 오우우."


"아우우 얄미워. 저 지지배는 꼭 고춧가루를 뿌린다니까.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 두들겨 맞고 사는 거 아니니?"


입술까지 오므리며 요염을 떠는 민숙이의 말에 농담 반 진담 반 섞은 미자의 반격, 다들 까르르 넘어간다.


말 한마디 안 하고 얌전하게 있던 미향이가 한마디 던진다.

"과부 앞에서  잘들 논다."


"어제는 아몬드를 아드득 아드득 씹어먹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  안 나게 씹어먹으라고 소리치며 베개를 날린 거 있지. 내 안에 깡패 있나봐."

혜정이가 또 하나를 날린다,


"아우 무식한 지지배들. 그럴 땐 어머 당신 아몬드 씹는 소리가 악기 같아요~~~ 오홍."

이어서 민숙이가 또 한건을 날렸고 동시에 야유와 함께 커피 세례가 이어질 뻔한다.



 


"아가! 아범 못 봤냐?" ㅡ시어머니


"금방 거실에서 봤는데 없어요 어머님?"ㅡ며느리


"아니 나도 방금 본 것 같아서 그런다."ㅡ시어머니


"쥐구멍에 들어갔나 봐요"(모기소리만 하게)ㅡ며느리


"너는 남편보고 쥐구멍에 들어갔나 봐요 가 뭐냐."ㅡ시어머니


그녀 남편은 홍길동 후예다. 신출귀몰 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반짝반짝 보였다 사라졌다 하기도 하고, 가끔 투명 비닐도 입고 다니니 가히 신의 경지 올라 선 듯하다.


"나랑 애들이랑도 좀 놀아줘요."


"미안. 지금은 바쁘고 오십 넘으면  놀아줄게."


"오십? 그땐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안경을 샀다. 남편이 안 보인다. 돋보기를 샀다. 그래도 안 보인다. 현미경을 샀다.  더 안 보인다. 까만 선글라스를 샀다.  안 보고 잘 놀기로 했고 아주 잘 놀고 있었다. 그녀 남편도 정년까지 채우고 은퇴를 했다,


"어디 가니?"


"회사~돈 벌어야  카드값도 내고 세금도 내고 별이 밥도 사주고.,,,(알면서 뭘 물어봐요 속으로는 그랬다)


"캠핑카 사서 전국 유람이나 다닐까?"


"지금은 너무 바빠요. 80 되면 생각해 볼게.(캠핑카 같은 소리 하시네)


"요즘 동네 아줌마들 끊었어? 당구는 안쳐요? 기타도 방역 패스 때문에 못 가는 거야? 사물놀이는?  좀 나가서 여자 친구도 만나고 놀다 와요."


"귀찮아."


안경도 돋보기도 현미경도 필요가 없어졌다.


"얘들아. 나는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대가 있어."


"어머 설마 너~~ 아니지?"


"애들 아빠 말이야. 젊었을 땐 돋보기로 찾아도 없더니 요즘엔 눈 감고 다니는데도 거실에 주방에 베란다에 아무 데나 있어."


박수까지 치며 눈물 콧물 흘리다 입안에 커피까지 뿜는 친구들. 너무 공감 간다며, 그런데 축 처진 어깨가 짠하다며, 짜증 나게 연민도 생긴다며......


어쩌면 이번이 단 한 번의 만남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기약 없는  다음 약속을 하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은둔 생활자들. 그녀들의 속풀이를 담은 하루는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묻혀갔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대들의 누군가

잘들 지내시는지요.^^


친구들 이름은 가명을 썼다. 그저 그런 날들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쉬움이 많은 시절이기에 소소한 추억을 남겨둔다.
젊은 시절의 작은 봉사와 희생은 부메랑이 되어 노년기의 꽃이 될 텐데, 우리 시절의 남편들은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랬나 보다며 끝내는 두둔으로 매듭 지어버렸다.
사진ㅡ별꽃

#그림과 사진ㅡ다음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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