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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Dec 18. 2021

문산역에 바람이 불고(2부)


장점 청년김치수제비

다음 인터넷 자료 캡쳐

시외버스 역까지 마중을 나온 버드나무 청년을 따라 는 뒤로  가을 햇살도  따라온다. 파주 거리가 익숙한 듯 청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며 걷는 영자의 콧소리가 약간 비위에 거슬릴 즈음 불쑥 파란 대문이 나타났 마당이 보였다. 


작은 마당 한가운데 사람 키보다 열 뼘은 더 자란 은행나무가 보였고, 덜 익은  은행잎을  물고 놀던 까치 두 마리가 종종종종 달아나다 담장 위로 날아오른다.


당까지 따라온 햇살도  담장 위에  올라앉고  겁결에 양장점 청년과 마주친 그녀는 당황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 두건까지 쓴

청년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다 한마디  던진다.


"드.. 들어가. 오느라 고생했어. 배고플 텐데 금방 수제비 끓여줄게."


재래식 부엌에 딸린 방작은 나무 옷장과 책 몇 권, 앉은뱅이책상, 그리고 라디오와 스케치한 청년의 자화상이 벽에 걸려있. 단출하나 정갈함이 돋보이는 살림살이다. 연탄 화덕에 올려진 찌그러진 냄비에서  육수 끓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청년은 둘러 수제비를 끓여냈. 접이식 다리가 달린 둥그런 오봉(알루미늄으로 만든 밥상) 위에  배추김치와 시원한 총각김치를 곁들여  내온 벌건 수제비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참지 못한 셋 국물 맛을 먼저 보는데 '호호'부는 소리, '꿀꺽' 넘어가는 소리,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만 한동안 이어졌다.  


멸치 우려낸 육수에  익은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대파 썰어 던지고, 양파 빠트린 후 푹  고았다는 육수는 칼칼하면서도 '캬~~'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씨~~ 원하면서 정말이지  눈물 나게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입이 짧아 도통 먹는데 취미가 없었던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중전화

다음 인터넷 자료 캡쳐

후로

청년 둘은 틈만 나면 서울에 올라왔고 양장점은 작파했는지 자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넷은 가을이 꼭 차도록 종로와 서소문 명동거리를 쏘다니며 음악감상실도 가고, 영화도 보고, 소풍 다니면서  배꼽 빠지게 재밌는 시간을 보. 겨울에 접어들면서 무슨 일인지 두 청년은 연락이 끊어졌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나야 상형이. 잘 지냈어? 그냥 갑자기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동안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했네. "

 

중전화 부스 너머  바람소리섞인 청년의  목소리는 애써 감정을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고모 눈치를 보며(그 당시 고모집에서 하숙이랄지 애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는 그녀  갑자기 모호해진 관계의 파동이 느껴졌다. 편한 친구라고만 생각했 시간이 밀려나는 걸까.


"응 그럭저럭. 상형 씨는 별일 없어? 영자랑 뽁남씨는 잘 만나고 있는 거지?"


"글쎄. 뭐 그냥 그런가 본데. 벌써 겨울이 깊어가네. 크리스마스 때 별 계획 없으면 영자씨랑 놀러 와."


시간은 더뎠지만 결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버드나무 청년은 친구 차라며  낡은

피아트를 끌고 역에 나타났다. 왠지 서먹해 보이는 영자와 청년은 생뚱맞은 인사를 주고받는다. 양장점 청년의 집 당 은행나무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했다. 




동상이몽

사진ㅡ별꽃

그날은 특별식이라며 돈가스를 만들어줬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돈가스와 수프  맛을 기억한다.


"나는 영자랑 결혼하고 너는 상형이랑 결혼해서  파주에 예쁜 집 짓고 살자. 네가 상형이랑 결혼하면 나도 영자랑 결혼할게."


"택도 없는 소리 좀 그만해. 친구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럼 이젠 파주에 다신 안 올 거야. 영자랑 뽁남씨나 결혼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쏘아붙였고, 그날따라 버드나무 청년은 수다스러웠다.


시골 변두리의 어둠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기에 서둘러 문산역으로 향한다. 철길을 만진 황소바람이 사정없이 귓불을 때리는데 버드나무 청년은 그녀를 잡는다.


"잠깐만 부탁하나들어주라. 상형이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둘이  만나보는 건 어때? 그놈 내 친구지만 진짜 멋있는 놈이야. 그리고 엄청 부자다. 둔촌동에 아파트도 있고 일본에도 집이 있어. 내가 너를 보자마자 마음이 끌렸는데 상형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양보했다. 자식 맨날 잠도 못 자고 끙끙 앓는다. 저놈이 너 때문에 아파서 연락을 못한 거야."


나 참. 누가 누굴 양보해. 그녀 마음과 상관없이 둘 엉뚱한 연애소설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 문산역에 바람이 분다. 그녀의 코트 단추를 여며주는 양장점 청년의 손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별

겨울회상ㅡ다음 인터넷 자료 캡쳐

넷은 갑자기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한참의 시간이 흘렀. 도 겨울도 아닌 간절기까지 공백은 이어졌고 다시 전화를 걸어온 양장점 청년과 그녀는 명동 한복판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게 되었다.


검은색 통유리로 된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은 둘은 서먹함을 견디지 못하고 뚝뚝 끊기는 말을 주고받다 침묵에 빠진다. 청년이 먼저 침묵을 깬다.


"내가 하는 말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를 친구처럼 대했지만 처음부터 친구 감정은 아니었어. 그래서 힘들었던 거고. 너의 진짜 마음이 궁금해. 나를 남ㆍ자ㆍ로 생각한 적은 없었니? 짝사랑이란 게 참 힘드네." 


"없어.  내 마음에 아직 이성을 받아들인 만한 공간이 없어. 미안."


그녀 자신도 차갑다 느낄 정도로 없다는 말을 두 번을 반복하고 통유리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순간 청년의 눈이 젖어 있는 걸 발견했고, 추운데 늦기 전에 일어서자며 년은 서둘렀다. 명동 거리는 스산했다. 청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어. 한동안 너를 잊지 못할 것 같아. 잘 지내. 먼저 갈게."


떠나는 순간까지도 청년은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청년의 등을 바라보던 그녀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이미 청년은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 다!"

"으이그. 또?.. 너는 눈이 높은 거니? 아님 모자라는 거니? 멋있는 남자 다 보내고 ㄸ차 만난다."
언니의 구박은 그날도 이어졌다.

그리고
무슨 이유였는지 영자랑 뽁남씨도 헤어졌다.
사진ㅡ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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