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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Jul 10. 2022

신사와 아가씨(4)

신사의 정체



"교보빌딩 옥상로 딱 한 번만 와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상념

가을이 깊어갈수록 뜻 모를 상념에 젖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는 그녀. 신사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괜히 버렸나, 하필 전화번호를 아버지가 근무하는 교장실 번호를 줬을까.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듯한 체구와 진중함이 묻어나는 잘생긴 얼굴이 조폭 같지는 않은데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남자 잘못 만나면 신세를 망친다는 어른들 말씀이 양쪽 고막 다다다닥 달라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십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고모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걸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 오다가다 한번 찔러본 거겠지.'

그녀는 내심 궁금증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경계의 감정에 조금 혼란스러웠고, 흔들어놓고 간 봄바람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음을 탓하는 여린 가지처럼 묘한 서러움이 치올랐다.  


그럭저럭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 바래져갔다. 정동길 조그마한 예배당 벤치에 떨어져 내린 낙엽들이 뒹굴어 덕수궁 돌담길에 모여들고, 사람들은 그 낙엽을 밟으며 자신의 감정을 발밑으로 쏟아냈다.  어느 날, 북창동으로 탁구 치러 가자는 친구 양언이와 깔깔거리며 서소문길을 걷는데 깍두기 머리를 한 청년 서넛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친구 양언이가 그녀 손을 꼭 잡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깡패들인가 봐.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반대방향으로 뛰는 거야. "

뾰족구두를 신은 그녀 둘이 달리자 깍두기 머리 청년들은 당황한 듯 소리를 지르며 뒤쫓아 오기 시작했다.

"아가씨! 아가씨들! 우리 깡패 아닙니다. 잠깐만 서 보십시오. 제발 잠깐만요. 저희들 심부름 제대로 안 하면 죽습니다."

그녀들 앞을 가로막은 청년 중 한 명이 급하게 쪽지를 내밀었다.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일 오후 1시쯤 교보빌딩 옥상으로 와주십시오. 후배들이 안내할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안현민'

 반듯한 서체로 쓰인 쪽지를 전달받은 그녀는 절대 안 간다고 버텼고 배라는 청년들은 한 번만 봐달라며 애원을 했다.


답십리는 그렇다 쳐도 그녀 회사까지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은근 걱정도 되었다.

친구 양언이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 같이 가보자며 그녀를 설득했다.



신사의 정체

다음날, 그 많고 많은 장소를 놔두고 옥상이라니 참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교보빌딩으로 향하는 그녀. 서소문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는 내내 태극기를 든 시민들로 복닥거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 어제 만난 청년 중 한 명이 나타나 죽은 애인이라도 돌아온 것처럼 잘 오셨다며 반색을 하는데 청바지 차림의 어제와 달리 복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검은색 목폴라티셔츠에 검은색 정장, 번쩍거리는 구두, 무전기인지 오른손에 든 물체에서는 지직 거리는 소리와 무엇을 지시하는 것 같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걱정했던 일이 생긴 거야. 신사는 틀림없는 조폭이야. 내신세는 다 망쳤나 봐.' 두려움에 오금이 저려오는 자신에게 침착하자, 기회를 봐서 도망가자 다독여봤지만 이미 옥상 위에 서 있는 그녀. 구 양언이는 되레 침착해 보였다. 


후배라는 청년이 망원경을 건네주었고, 갑자기 분주하고 급한 추임새가 사방에서 감지되었다. 망원경 속 광화문 광장에서는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진귀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흰색 상의에 스키니 검은색 바지를 입고 흰색 헬맷을 쓴 경찰들이  오토바이를 필두로 의전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검은색  고급 세단차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고  도로 양옆에는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건장한 신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예의 주시하며 차 양옆에 서서 한 손은 차 지붕에 얹은 채 밀착해 뛰듯이 나, 일부는 차 양옆 난간에 올라선 채 엄호하고 있었다.


"저분이 선배님이십니다. "

그랬다. 신사의 직업은 경호원이었다. 가장 중요한 위치라며  후배라는 청년은 설명을 덧붙였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없는 이유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 아버지가 근무하는 교장실 전화번호를 알려준 이유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후배들의 심부름은 겨울 끝까지 이어졌고, 그녀는 매번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쩌면 신사는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하고도 아득한 생각과 번민이 그녀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못난이 중에 못난이. 네 얼굴과 교양이 아깝다. 그러다 너  진짜 똥 고른다."

 그녀의  속 이야기를 들은 시집간 언니는 속이 터져 죽겠다며, 연애 못하고 나중에 똥이나 만나라며 경질적으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밖엔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올케언니의 친정어머니가 나서서 중매를 서두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전해 듣는다.


#사진ㅡ다음 인터넷 캡쳐

ㅡ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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