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을 가로질러 난 텃밭 가장자리에 우뚝 선 감나무 아래 비를 피하느라 동네 개들이 모여들었다. 희옥이네 사랑채 처마 밑 뜨락에는 어디서 뒹굴었는지 벌건 흙범벅이 된 동네 개구쟁이들로 소란스럽다.
“아이고 고놈들 참, 시끄러워 못 살겠네.”
짐짓 화를 내는 척하시며 희옥이네 할머니는 병석에 누운 몸을 일으켜 사랑채 문을 열고 괜한 참견을 한다. 구들장에 누인 몸도 서러운데,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 수가 점점 줄어드니 아이들 소리가 여간 반가웠던 게 아닌 모양이다.
“아이고 그새 감나무 잎새가 저렇게나 자랐누. 뽕나무도 많이 컸구나. 아이고 고놈 참 맹랑하구먼. 까부는 고놈은 뉘 집 자손인고?”
행여 달아날까 싶어 쉴 새 없이 말을 붙이는데, 그런 할머니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이들이 갑자기 달음박질을 치며 달아난다.
제법 어른 흉내를 내며 집안 살림을 챙기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들과 누나들은 바구니며 바랑을 어깨춤에 메고, 신작로 건너 앞산으로 향한다. 비 온 뒤, 참나무 아래 우후죽순 솟아 난 서리 버섯이며, 개금 버섯이 바구니로 바랑으로 채여 들어가고, 산뽕나무에 달린 비에 젖은 오디를 훑어 먹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버섯 따는 건 아예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사슴벌레 잡는다며 야단이다.
“버섯 잘못 먹으면 죽어. 먹을 수 있는 버섯도 참기름에 달 달 달 달 볶아서 독을 제거해서 먹어야지 안 그럼 배탈 난다니께. 진짜여물똥 싼다니께”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나름 가진 상식을 펼치던 아이들은 행여 독버섯을 채취한 건 아닌지 어른들께 검사받아야 한다며 효성이네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아이고 고놈들 손 참 야무지다. 잠깐새 많이도 땄네. 오늘, 내일 반찬
걱정은 없겠구먼.”
다음 인터넷 캡처
비 그친 하늘 가장자리로 쌍무지개가 떠오르고, 집 집마다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밥 짓는 냄새, 버섯 볶는 냄새와, 군침을 삼키며 기다리는 아이들의 울렁거리는 마음이 울타리 너머 동네 어귀까지 번진다.
“참, 희옥이 누나네 할머니도 버섯 볶은 거 잡수셨나? 좀 갖다 드릴까유 아부지?”
일곱 살짜리 막내의 철든 속내에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다.안 그래도 엄마는 희옥이네 할머니 드리려고 따로 소쿠리에 수북이 담아두었던 것을 막내에게 들려 보낸다.
비에 씻긴 하늘에 까만 밤이 찾아오고, 별이 촘촘히 박혔다. 툇마루에 앉아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을 헤아리던 아이들이 하나, 둘 쓰러져 잠이 들고, 소쩍새 울음소리가 새벽녘까지 길게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