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복선일까..

수련ㅡphoto by Kim Jae Moon

by stellaㅡ별꽃
아침 공양 시간 ㅡ미황사 공양간ㅡphoto by 황성자

아침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공양간엔 사람들이 가득 찬다. 꾸밈이 없고 정갈한 사찰음식을 좋아하는데 그중 미황사 공양시간은 유독 기다려진다. 비우려 왔는데 난 자꾸 음식을 탐한다. 오늘 아침은 감자를 으깨어 되직하게 끓인 떡국이다. 담백하고 고소다.

평소보다 과식하고 후회한다.

감자를 으깨고 들깨가루를 넣어 되직하게 끓인 떡국ㅡ미황사 아침공양

베개 커버와 이불 커버를 벗겨 반듯하게 접어두고 욕실부터 꼼꼼하게 청소를 한다.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하고 그 틈에 나뭇잎은 부르르 떨며 비에 젖은 몸을 털어낸다.


이곳은 아날로그 시간이 흐르고 있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고요함 사이를 '툭' 갈라버리는 남자 목소리.


"어제 도솔암을 갔다가 길을 잃었는디 아줌마는 어처게 할규?"


스님이 말 한번 걸었다가 치고 들어갈 틈을 못 잡고 숨만 몰아쉬던 수련자들의 얼굴이 참다 참다 붉게 경련이 일쯤, 스님이 아예 대화를 끊어버렸던 그 남자.


난 얼른 방문을 닫고 빗장을 건다. 대꾸했다가 말귀신에 붙잡힐 것 같다. 문틈으로 빼꼼히 밖을 내다보니 '에잇 저런 저런. 동화를 마루 위에서 신는다.

벗어 둔 속세의 옷이 덩그러니 걸려있다ㅡphoto by 황성자

갈 길도 멀고 들를 곳도 있어 아쉬운 마음과 함께 수련복을 벗어 곱게 접는다. 옷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고요하던 마음은 사찰 밖으로 나를 이끈다.


벌써 가시냐며 더 아쉬워하는 종무소 보살의 손에 수련복을 넘겨준다. 짧았던 지난 하루는 모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담양 어느 마을ㅡ꽃잎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보았다ㅡphoto by 황성자

배롱나무 정원을 찾아서

언젠가 출판인들과 숨은 명소를 찾아다니다 발견한 작은 정원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때쯤 꽃이 만개하고 정자는 고색창연함에 빠져 있으리라.


일명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 꽃은 한번 피면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다. 원뿔 모양의 꽃대를 뻗고 아래부터 위로 이어달리기처럼 피어나는 꽃은 다 피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백일홍이다. 6~7장으로 된 꽃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글쪼글 주름이 져 있는데 배롱나무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기와 지붕 위에 머무는 벼롱나무 낙화ㅡ담양ㅡphoto by 황성자

그런데 도통 정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죽녹원인가 네비를 검색해 달려간다. 장맛비에 불어난 영산강은 벌건 흙탕물이 넘실대고 사이좋은 오리 한쌍은 겁도 없이 물살을 탄다. 찾는 장소가 아니다.


말 탄 김에 고삐 잡는다고 죽녹원 뒷길을 어슬렁 거린다.

후텁지근한 열기가 발끝부터 스멀스멀 오른다. 아이들 침대에 깔아주려고 돗자리를 고르다 가격에 놀라 슬며시 가게를 나온다.

죽녹원 주변 골목길 풍경ㅡphoto by 황성자

배는 고픈데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어 다리를 건넌다.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는 느티나무 아래 넓은 평상이 펼쳐져 있고 어릴 적 오봉이라 불렸던 밥상이 정겹게 앉아 있다.


혼밥을 누구 눈치 안 보고 잘 먹기 시작하면서 여행도 좀 편해졌다. 가끔 호기심이나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눈이 아픈 건 아니니 상관하지 얂는다.


주막처럼 생긴 가게에 들어가 죽순 비빔국수를 주문한다. 밤샘하며 작업하는 두 아들이 마음에 걸린다.

죽녹원 부근 영산강이 바라다 보이는 마을ㅡphoto by 황성자

정원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여유와 한가로움에 빠진다.

유년의 고향 풍경을 닮은 정겨움, 소낙비가 쏟아지고 나면 비 갠 하늘엔 촘촘히 무지개가 걸린다. 고추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고 동네 꼬마들은 개구리를 잡는다며 부산을 떤다.


밀가루에 날콩가루 섞어 조물조물 반죽을 해 홍두깨로 밀어 송송 썬다, 밀가루 한 줌 뿌려 후루룩 손가락 사이로 면이 빠져나가고 가마솥엔 듬성듬성 썰어 넣은 감자와 함께

물이 끓는다.


'툭' 담장 위에 열린 호박 하나가 엄니 손에 잡힌다. 국수가락이 후루룩 쟁반에서 쓸려 가마솥으로 쏟아지면 한소끔 끓은 후 송송 썬 호박이 달려간다. 커다란 국자로 바닥까지 휘 저어 그릇에 담고 매운 고추 다져 만든 양념간장을 끼얹는다.


'얘들아 그만 놀고 저녁 먹어! 국수 불어 어여들 와."

엄니들 목소리에 덩달아 개들도 짖고 때 구정물 흐르는 아이들도 하나 둘 집을 찾아 들어간다.

죽순 비빔국수와 파전ㅡphoto by 황성자


문득 달려 간 유년의 공간에 취해 배시시 혼자 웃는다. 아삭한 식감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비빔국수를 게눈

감추듯 비웠다. 욕심부린 파전은 그대로 남았다. 그 장소를 기억해 내야 할 텐데. 소쇄원이었던가. 난 급하게 검색을 다.

(2019.7.28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