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 흐드러진 정원에서 스치다

끌림과 복선(표지 사진 Photo by Kim Jae Moon)

by stellaㅡ별꽃
담양 메타세콰이어 정원ㅡphoto by 황성자

백일홍 꽃 대신 메타세콰이어


맞다. 소쇄원이었어. 문득 생각난 이름에 기쁜 난, 목적지를 변경하고 달린다.


작은 마을을 지나 과수원을 거쳐서 오르던 길이었는데 시원하게 뚫린 길 영 낯설다.

다시 차를 돌려 나오다 발견한 풍경에 멈춘다.


저기가 그 유명한 담양 메타세쿼이어 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료 2천 원을 내고 정원으로 향한다. 비가 다녀 간 탓인지 공원은 한적하다.

담양 메타세콰이어 공원내 김정호 동상ㅡphoto by 황성자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김정호의 노래비.

'음~~~ 생각을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도.....'

그와 그의 노래를 사랑했다.

서른 셋을 살다 간 그의 흔적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명옥헌 연못ㅡ비에 젖은 수련잎ㅡphoto by 황성자

정원의 비밀

인간이 때론 참 아둔하다. 급하게 인터넷 검색을 한다. '담양 배롱나무 정원' 검색 결과는 '명옥헌' 아! 맞다. 마음이 급해진 난 달린다. 낯익은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원을 향해 걷는다. 오를 대로 오른 습도에 몰골이 사나워 모자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볼 것 아무것도 없어요. 지랄! 여기가 왜 좋다고 알려줘서 더운데 고생을 하게 해. 내려가서 시원하게 냉커피나 마시는 게 나을 거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불평을 한보 따리 풀어놓고 내려간다.


괜한 참견을 하고 싶었던지, 아님 너무 아름다워서 숨겨놓고 자기만 보고 싶었던지 내 맘대로 생각다.

명옥헌 가는 길 풍경ㅡphoto by 황성자


"아휴 더워. 볼 것도 없네. 힘만 들고. 에어컨 틀고 집에서 잠이나 잘 걸."


여자 서넛이 인상을 잔뜩 쓰며 내려온다. 조금 불안했지만 계속 걷는다. 배롱나무에 가려진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몇 해 전 기억과 달리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모습에 나도 주춤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볼 것도 없다며 한 바퀴도 아니고 걸어온 길로 내쳐 내려간다.


촬영이 있는지 근사한 카메라 장비가 정자에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앞을 스치며 아주 작은 소리로 죄송하다 전한다.

명옥헌 전경ㅡphoto by Kim Jae Moon

난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오른다.

카메라는 배롱나무 꽃을 탐하지만 플레임엔 생각처럼 담아지지 않는다.

!!알아차림이 인연!!


"사모님!....."

뒷말은 못 듣고 비켜 달라는 줄 알고 일어서려는데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묻는다.


요즘엔 사진 찍기가 꺼려진다. 카메라 기술이 좋은 건지 실제로 내가 그만큼 늙은 건지 미세한 주름까지 잡아내는 렌즈가 가끔 무섭다.


뽀샤시 어플로 찍는 사진은 너무 속임수가 심해 찍어 놓고도 지워버릴 때가 많다.

뒷모습만 담는다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명옥헌 정자ㅡPhoto by Kim Jae Moon


물총새가 물고기를 낚아채 날아오르거나, 까칠한 꾀꼬리가 붉은 열매를 쪼아 먹고, 아기새들이 어미새를 기다리고, 나비의 섬세한 날갯짓까지 고스란히 그는 담아냈다.


물속에 비추인 사물의 내면은 물론 고요와 침묵마저도 찾아내는 심미안,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진정한 예술가를 만난 것 같아 수다가 쏟아진다.


인연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야 할 운명이라면 먼길을 돌더라도 맞닥트리게 되는 게 섭리다. 나는 괜히 헤맨 것이 아니었다. 명옥헌 연못에 뛰어노는 소금쟁이가 바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비우고 나니 채워주셨다. 복선도 알아차려야 한다

도솔암 가는 길에 찍은 거미줄ㅡphoto by 황성자

이 곳 배롱나무 정원도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 온다. 그 인연이 또 인연을 낳으니 그 고리는 마치

거미줄 같다.


사진 몇장이 카톡으로 날아든다.

사람은 스치고 사체의 기억은 남겨졌다.

인연이란 알아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