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혼자서
모든 움직임에 합리화된 의미라도 부여해야만 실행이 쉬워진다. 그래서 나와 인접한 모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모든 경우에 대해 설명 가능한 의미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마음을 쏟은 의미가 내 곁을 비울 때 찾아오는 공허함도 감당하기에 벅차다. 모두가 의미 있기에 버리는 것도 쉽지 않고, 잃는 것은 괴롭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예측 못할 의미가 불쑥 찾아와도 그것을 곧바로 위치시킬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만 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
고로 나는 차라리 ‘개체와 전체 모두’에 대해 ‘처음부터‘, ‘혼자서’ 시작하고 끝을 내기를 좋아한다. 이미 규정된 부분의 기준을 나만의 이유로 재규정해 내는 것도 쉽지 않고, 이것을 타인과 조율하는 작업 또한 쉽지 않다.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 고쳐야만 하는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을 선호한다. 리모델링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결과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임도 샌드박스형 게임을 좋아했다. 집을, 놀이공원을, 도시를 처음부터 나만의 체계에 따라 벌판에서부터 쌓아 올리기를 선호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유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백지에서부터 설계하기 원함이다. 스타트업에서는 주어지는 권한과 담당할 분야의 범위가 비교적 넓기에, 주니어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즉, 모든 체계를 나를 기준으로 형성된다. 그것이 생각처럼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