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체계와 정리에 대한 강박은 일을 하기 위한 회사인지,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인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회사의 내 책상도 업무에 도움 될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사용 빈도와 관계없이. 사내에 손꼽히는 맥시멀리스트의 책상이다. 집에서는 내 방 행거에 옷걸이를 같은 색상끼리 경도를 순서로 걸어두었고, 그에 맞춰 옷은 재질이나 두께 등 유사성을 순서로 걸려 있다. 책은 장르와 테마에 맞춰, 이를테면 역사 관련 책은 ‘비문학-인문학-역사-세계통사/지역사-대륙-권역-국가’ 순서로 꽂혀 있고, 블루레이는 제작사/국가/감독/시리즈 넘버 등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시리즈로 발매된 책은 단권을 사거나 전집 혹은 세트를 사야만 했다. 덕분에 몇 년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사고 싶고 언젠가는 살 것 같아서, 그중에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그것만 사지는 못하고 있고, 시리즈 영화의 박스 세트 블루레이는 웬만해선 사지 않는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완벽했던 시리즈 <토이 스토리> 1~3편도, 그 결말에 더해 4편이 나왔고 곧 5편에도 착수한단다. <토이스토리> 트릴로지 세트를 샀는데, 4편까지의 블루레이 세트가 새로 나온다면 처음 세 편의 블루레이가 모두 두 개가 되거나, 4편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래서 시리즈가 더 나오지 않으리란 믿음으로 구입한 탑건 1과 2의 블루레이 세트는 3편 제작에 대한 불안함을 담당하고 있다.
콘텐츠를 감상하는 일도 그렇다. 드라마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중도하차가 발생할 경우가 적기 때문이고, 시즌이 긴 드라마일수록 시작하기가 두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안 본 눈이 되기엔 늦어버린 마블은 다음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그 이전의 영화와 디즈니 드라마를 다 보아야만 하고, 이를 넘어 넷플릭스와 이외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들 또한 나는 언젠간 모두 볼 것이라 다짐한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에이전트 오브’ 시리즈와 같은 방대한 시즌과 에피소드의 드라마들은 시작하기가 겁이 난다.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할지라도 중도하차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나의 뇌는 이것을 사실상 하차라 정의하지만, ‘언젠간 볼 것’이란 나의 근거 없는 믿음은 그 판단을 무마시키며 하차점 이후의 모든 스포일러를 완강히 거부하게 만든다. 보고 있나, 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