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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서류전형 자소서에 이런 내용 써도 될까?(2부)

인터스텔라에서 발견한 뜻밖의 자소서 스킬

by 멘아탄


그럼 자소서는 얼마나 솔직하게 써야할까?

지난 글 : https://brunch.co.kr/@fractalize/53


(1부)에서 '자소서에 보상에 대한 내용을 언급해도 될지'에 대해 좀 심도있게 다뤄봤다. 말이 심도있게지 다소 TMI 였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뭐 이런 글들을 하나 둘 읽다보면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읽는 당시엔 모르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말이 그뜻이었구나, 그말이 맞았구나' 라는 경험. 스티브잡스의 'Connecting Dots' 는 여기에서도 통한다.



'보상'에 대한 내용을 좀 뜯어보면 아래의 3가지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했었다. 그리고 (1)은 이미 이전글에서 설명했다.

(1) 자소서에 '보상'에 대한 내용 자체를 언급해도 되는가?
(2) 보상에 대해 '얼만큼 솔직하게' 써야하는가?
(3) 읽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럼 남은건 (2)와 (3). 그런데 (1)에서 이미 '보상'에 대해 쓸지 말지에 대해 해결했으니 이번엔 자소서엔 대체 얼마나 솔직하게 써야하는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자.


3998a889-bda1-4292-8263-93d763753aa1_text.gif 타스, 이녀석..




자소서에선 딱 90% 정직해야 한다.

위에 올린 짤은 인터스텔라의 명장면 중 하난데, 쿠퍼와 로봇 TARS가 농담을 주고받다가 정직도(honesty setting)를 조정하면서 나온 대사다.


"Absolute honesty isn't always the most diplomatic, nor the safest form of communication with emotional beings."
"절대적인 정직함이 항상 가장 외교적인 방법은 아니며, 감정을 가진 존재들과 소통할 때 가장 안전한 방법도 아니다."


즉,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완곡한 표현(혹은 적절한 뻥카를 섞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90%로 세팅된 TARS의 정직도는 이후 영화의 스토리에 아주 중요한 복선이 된다.


난 이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자소서에서도 딱 90%의 정직도를 보이는게 좋다는 입장이다.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애초에 인간은 양심과 기억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100% 정직할 수가 없다.
둘째, 99%까진 정직해질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옳은지는 별개 문제다.


첫번째 문제야 뭐 토를 달 수 없다. 참인 명제니까.

두번째 문제는 해석이 좀 필요한데,



회사는 애초에 취준생이 100% 정직하길 바라지 않는다.

엥 이게 무슨말이냐고?


넌센스같다면 이런 예시를 상정해보자.

썸을 타고있는 남자A와 여자B


A가 덜컥 B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 너랑 결혼하고싶어. 애는 두명이면 충분하고 이름은 윤지, 예서라고 짓자"


이 때, B는 기분이 어떨까?

B가 아무리 A에게 호감이 있었어도 당장 결혼할 정돈 아니었을 것 아닐까? 애초에 B는 DINK*족을 꿈꾸는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B는 '감도 없이 연애도 건너뛰고 결혼과 출산을 얘기하는 A'에게 순식간에 질려버리고 심지어 무서움까지 느끼게 될거다. 왜, 그건거 있지 않나. 순수함을 넘을 정도로 엉뚱하면 오히려 무서워지는 거.

* Double Income No Kids, 딩크족 : 아이 안낳고 자녀 양육 부담 없이 여가, 여행, 자기계발 등에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부부를 가리킴.



안타깝지만 이건 A가 B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다. 호감을 넘어 일평생 찾아헤매던 이상형을 만났으니 B의 눈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기 전에 결혼을 해버리고 2세의 이름을 지어버리는 마음으로 발전했을테다. 이상형과 결혼한 나로선 A의 마음이 십분 이해는 된다..


그럼 이 썸이 파토가 난게 A가 B를 너무 좋아해서였을까?

아니다. 정확하게는 '너무 솔직해서'였다.

필요 이상으로 정직했고 솔직함의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못맞춰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소서엔 얼마나 솔직하게 써야하는가?'

A와 B를 떠올려보면 딱 취준생-회사 관계와 같다.


1. A와 B가 썸을 타는 상황 = 지원자가 서류를 제출하고, 회사의 심사를 기다림
2. A가 급발진으로 솔직해버림 = 너무 취업하고 싶어서 솔직한 마음을 자소서에 다 씀
3. B는 '얘 뭐지..' 하며 마음이 식어버림 = 서류 광탈



은근슬쩍 드러내는 본심의 기술

어찌어찌 썸을 타게 됐다면, 적절한 정직함으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기를 드러내야 한다. 이건 결코 '자소서에 구라를 치라'는 뜻이 아니다. A가 B와 결혼하고 싶었던 게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 처럼.


이런 식으로 스몰토크로 시작해 점차 진지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그림을 그렸어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연수 때문에 작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었어.
거기서 언어 뿐만 아니라 벤처 문화를 경험했지.

지금도 생생한 특이한 경험을 했었는데, 한번 들어볼래?

그리고 난 이럴땐 이렇게 행동하고, 저럴땐 저렇게 행동해.

때론 이런 단점이 있지만 그걸 상쇄할만한 장점도 많아.

난 종종 혼자있는걸 즐겨하지만 같이 있을 때 더 힘이 나는 스타일이야.

다른 남자들보다 내가 더 나은 이유는 내가 가진 헌신과 열정 때문이고.

난 예전부터 이런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너가 딱 그래.

지금은 대학공부를 막 끝내 자격증이 1개밖에 없지만, 앞으로 자기계발을 더 열심히 할거고.

사실 나한테 C가 좋다고 고백한 적 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돼서 거절했었거든.

내가 사는곳에서 너희 집까지 좀 멀지만, 우리가 잘된다면 전념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로 이사할 계획이야.

난 이제 연애를 하면 좀 오랜동안 진지하게 만나보고싶어.

등등..



읽어보니 어떤가?

자소서에 무슨말을 써야할지 대충 감이 오지 않나?


미국 실리콘밸리 얘기, 특이한 경험얘기
→ 자기만의 에피소드 풀어내기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 회사의 가치관과 fit이 맞다는걸 은연중에 강조

단점, 장점 언급
→ 인성 문제 없다는걸 인증.

혼자도 좋지만 함께도 좋다
→ 무조건 혼자, 무조건 같이 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직에 스며드는 스타일임을 설명

다른 남자들보다 내가 더 나은 이유
→ 타 지원자 대비 차별화요소 제시

이런 스타일 좋아하는데
→ 지원동기

헌신과 열정, 자격증 + 자기계발
→ 지금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

C에게 고백받은 썰
→ A가 어디선가 인정받고 있다는걸 넌지시 던져 회사가 한번 직접 보고싶게 만드는 하는 기술

집 가까이 이사할 계획
→ 이 상황에 내가 진지함을 어필

오랫동안 만나보고싶음
→ 이회사 저회사 간보지 않고 뽑아주면 최소 5년 알박기 할 예정임을 강조


보다시피 A가 B에게 말했어야 하는 내용들은 취준생이 회사에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으로 1:1 치환이 된다.

이것만 알아도 자소서에 '보상'같은 이상한 얘긴 안할 수 있다.


2025-02-25 23 06 41.png 다시 한번 읽어보자. 이젠 이게 자소서에 들어가선 안된다는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확인사살을 위해 위의 내용을 조금 의역해서 치환해보자.

만약 A가 B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B가 기분이 어땠을까?


"나는 여자친구의 얼굴이 중요한 사람이야. 너의 얼굴은 개인적으로 예쁨을 넘어 여신같은 수준이야. 요새 MZ들은 성형도 많이 한다고 알고있어. 근데 너 정도의 얼굴이라면 다른 성형미인이 오더라도 내가 유혹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너를 선택했어. 나를 받아줘."


최악 아닌가? 어느 정신나간 놈이 잘되고 싶은 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할까 싶다. 정녕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듣는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멘트는 상황을 망친다는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회사는 취준생이 아마추어라고 봐주지 않는다. 도리어 지원자가 아마추어 가면을 뒤집어 쓴 프로이길 원하는 게 회사의 솔직한 본심이다.





올바른 자소서 작성은 연애편지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애를 잘하는 방법 중 검증된 한가지가 있다.

"Push and Pull"

쉬운 말로 밀땅이라고 하던가.


회사와 취준생이 하는 것은 연애편지를 주고받다가 진심이 조금씩 통하며 화상통화도 한번 해보고, 실제 한번 만나도 보고, 한번으로 부족하면 두어번 더 보고 밥도 같이 먹어보고 서로의 친구를 데려와서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어떤지도 살펴보고, 좀 더 진지해지면 부모님께도 소개하고 하는 과정이다.


그러다가 서로의 패가 어느정도 드러나고, 다른 패와 비교해봐도 이사람이다 싶고, '이정도면 미래를 함께해도 좋겠다'고 결심이 서면 결혼을 하고 애도 낳고 하는 것이다.


절대로 진심이라는 명분으로 본인의 치부를 100% 까지 말자.

회사에는 90%만 솔직해야 한다. 10%는 차차 알아갈 여지로 남겨두고 말이다.

10%가 문제가 안될정도로 친해지고 나면 그때 오픈해도 늦지 않다.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다.


다시 말하지만 10%는 '거짓말'을 의미하진 않는다. '꾸밈'의 영역이다. 굳이 오픈해서 좋지 않을 내용은 넣어두고 상대방이 듣고 좋아할 법한 90%를 잘 꾸며서 드러내는 기술. 그게 자소서 합격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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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엔 '(3) 읽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3부작을 완결하고자 한다.



기회가 된다면 사회에 조금 더 먼저 길을 터놓고 가고 있는 입장에서, 구직자/취준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묻고 대답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혹시 알겠는가, 필요하다는 댓글이 달린다면 번개 줌미팅을 적극 고민을 해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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