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어려운 진리, 역지사지
제발 평가자 입장에서 1분만 생각해보자
지난 1부와 2부에서는
자소서에 보상에 대한 내용을 적어도 되는지 (1부)
자소서는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 (2부)
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글 : https://brunch.co.kr/@fractalize/53
지난 글 : https://brunch.co.kr/@fractalize/54/
오늘은 마지막으로 '읽는 이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즉, 평가자의 시선에서 자소서를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자소서를 쓰는 취준생 입장에서는 늘 '내가 하고 싶은 말' 위주로 작성하기 쉽다. 그건 본능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자소서를 읽는 평가자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막말로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냉소적으로 볼 건 없는게, 알고싶지 않은 게 아니라 회사 입장에선 자소서에 적힌 내용 하나하나를 빠르게 훑어야 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좀 더 적합해보인다.
우리는 자소서를 쓸 때 그걸 읽는 사람(평가자)의 시선에서 작성해야 합격할 확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그걸 못할까?
그놈의 Ego* 때문이다.
Ego, 에고 : '자아' 또는 '나'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 요새는 심리학적 용어로서 '자존심', '(다소 높은) 자존감' 의 느낌으로 사용된다.
이걸 고쳐먹으려면 먼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병을 치료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 하니까.
1. Ego의 방어기제 :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2. '내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할거야' 라는 인지편향(Cognitive Bias)
3. 자기고양편향(Self-enhancement Bias) : ‘자신을 포장하려는 욕구’와 ‘자기합리화’의 콜라보
첫째, 자소서를 쓸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선하는 것은 Ego(자아)의 방어 기제와 연관이 깊다. 자아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취준생이 '자기 하고싶은 말 위주로 작성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이야기한 게 이 때문이다. 평가자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우리의 Ego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고
내가 해온 노력과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자소서는 ‘자기소개서’이므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자소서 작성 중 무의식적으로 ‘나’ 중심의 이야기를 적게 되는 것이다. 이건 과거의 나도 피해갈 수 없었다. 수십번의 광탈 끝에 깨달음(?)을 얻어 심플하고도 임팩트 있는 자소서를 쓸 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둘째,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 도 '내가 하고싶은 말만' 하는 경향에 영향을 미친다.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니 좀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뢰한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이니 너무 뭐라 할 것도 없다.
자기중심적 편향에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사건이 남들에게도 중요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흥미롭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당신이 어학연수가서 한국인의 밤을 이끌었든, 워홀 가서 옥수수를 하루 종일 땄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내 얘길 주구장창 늘어놓기 전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할게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평가자는 한 명의 지원자가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자소서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의 서류 전형에서 평가자는 지원자의 자소서를 단 몇 분 만에 읽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때문에 지원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보다는 기업이 알고 싶은 정보를 주었는지가 훨씬 중요한거다. 어학연수 자체보다, 옥수수 자체보다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이 중요한거다.
셋째,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를 자기고양편향(Self-enhancement Bias) 이라고 한다. 앞에 나온 '자기중심적 편향'이랑 얼핏 비슷하지만, 자기중심적 편향이 '내 경험과 관점이 가장 중요해'라면, 자기고양편향은 '내가 최고야'에 가깝다. 두개가 합쳐지면 약간 나르시시즘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딱 좋은 특성 아닌가?
자소서에서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적극적으로 쓰긴 해야 하지만, 여기에 꽂혀서 과하게 강조하다보면 ‘나에 대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함정에 빠진다. 사실 별거 아닌데 '그래 그때의 난 정말 멋있었지...' 하면서 스스로에 취한 모습이 찰나라도 평가자에게 느껴지는 순간, 불합격 급행열차다.
이렇게 3가지의 이유로 인해 평가자의 입장에서 서술해야 한다는 걸 아는 취준생도 어쩌다보니 본능적으로 ‘나’ 중심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쓰게 되는 자기합리화 과정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획자가 되고 싶은 꿈나무가 많다. 하지만 '기획'이라는 정의하기도 모호한 업무를 하고있는 미래의 멋진(?) 모습만 상상할 뿐, 그걸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ex. 자소서, 면접)에 대해선 정작 '기획'이라는 걸 적용하지 않는다.
기획자를 뽑는 회사가 지원자의 자소서를 보고 '스토리든 짜임새든 구성이든 기획이 잘 안돼있네' 라고 평가한다면, 그 사람이 어느 회사에 지원한들 '기획자' 포지션을 얻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거다.
"기획자로 일하고싶다고 지원했으면서 자소서 하나 제대로 기획못하다니. 괘씸하다. 탈락이다."라고 하지 않을까?
이건 비단 '기획자' 포지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무슨 일을 하게되든간에 '평가자를 설득'하려면 말이 돼야하니까. 설득한다는건 맥락에 맞는 고민을 필요로 하고, 그 고민하는 과정이 '자소서 기획'인거다.
됐고, 그럼 기획이 잘된 자소서는 대체 어떻게 쓰는거냐고?
내 기준에 가장 좋은 자소서, 기획이 잘된 자소서는 아래의 3가지 질문에 미리 대답해줄 수 있는 자소서다. 평가자는 아래의 3개 질문을 텍스트로 미리 답변하는 지원자를 결코 허투로 여기지 않는다. 가장 궁금한 내용에 미리 답변을 하다니. 이런 지원자를 면접에 올리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1. Why this industry?
2. Why this job?
3. Why me?
1번 질문
왜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 유통업, 패션, 게임, 식음료, 제조업이 아니라 왜 IT에 오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동기는?
→ 여기에 대한 답변이 되었다면 비로소 2번 질문으로 넘어간다.
2번 질문
Okay. IT업계에 오려고 하는 이유는 잘 알겠다. 그런데 왜 IT업계에서 하필 '기획'을 하고자 하나? 운영, 사업, 영업, 개발, 전략, 데이터분석도 아니고 하필 '기획'인 이유는? 그 동기는?
→ 여기에 대한 답변이 되었다면 역시 3번 질문으로 넘어간다.
3번 질문
Okay. 왜 IT업계에 오려는지, 왜 기획자가 되고 싶은지도 잘 알겠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왜 하필 '당신'을 뽑아야 하는가? 지원자가 한 1,000명정도 더 있는데 그 중에서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 말이다.
→ 여기까지 답변했다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다. 평가자 입장에선 거를 타선이 없는거다. 면접에 올라가서 헛발만 딛지 않는다면 합격 안시킬 이유가 없다.
자소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평가자가 듣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1부에서 ‘보상에 대한 얘길 써도 될지 말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고, 2부에서 ‘자소서는 얼마나 솔직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글, 3부에서는 '평가자는 대체 지원자에게서 무슨얘길 듣고싶어하나' 라는 관점에서 '말이 되는, 잘 기획된 자소서'를 분석했다.
취업 시장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회사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서 나를 포지셔닝하는 과정'이다.
이제 제발 자소서를 작성할 때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평가자에 빙의’해서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 그것이 자소서 합격률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기회가 된다면 사회에 조금 더 먼저 길을 터놓고 가고 있는 입장에서, 구직자/취준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묻고 대답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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