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출시 하루 전, 포장 가이드가 없었다

by 감정 쓰는 직장인

이직 후 처음 맡은 제품이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온라인 판매 페이지는 이미 오픈된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배송 포장 가이드가 없었다.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

며칠 전, 물류팀에서 메일이 왔었다.

“포장 가이드를 내려주셔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 그런데 이건 누가 하는 거지?’
기존엔 담당 팀장이 맡았던 업무였다.

하지만 그 팀장은 퇴사했고, 새로 바뀐 팀장은 너무 바빴다.
그리고 나는 포장 가이드 작성이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책임은 내게로 돌아왔다.
몰랐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대충이란 없다. 작은 것도 결국 리스크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직접 구상에 들어갔다.
물류센터가 취급하는 포장재 종류와 규격,

각 포장재에 제품이 몇개 들어가는지 체크한 다음

1~6개 소량 주문은 보냉팩에 담기로 결정했다.


영업사원이 내게 물었다.

“택배기사가 던졌을 때 터질 수도 있는데, 테스트는 해봤나요?”


또 다른 우려도 나왔다.

“보냉팩에 담긴 제품을 받으면 고객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대표는 소량 구매도 중요하다고 했고,
다른 팀에서는 포장재 SKU(운영 품목 수)가 늘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누군가는 비용을, 누군가는 이미지와 효율을 걱정했다.

그렇게 단순한 포장 가이드를 두고 모든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하루 만에 뒤집힌 결론

우여곡절 끝에 테스트도 끝냈고, 수량별 포장 가이드를 공유하려던 날 오전.
물류팀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포장재는 수량 상관없이 1종으로 통일해주세요.
센터에서는 보냉팩과 완충재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와 완전히 다른 말이었다.
나는 메신저로 직접 물었다.

보냉팩 어제까지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에어셀 같은 완충재는 활용 못 하나요?

의류용 택배봉투는 대체 가능할까요?


회신을 기다리며 답답한 마음에 팀장에게 구두 보고를 했다.
그러자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냥 물류팀 ‘개인 의견’이야. 정확한 건 SCM팀 통해서 확인해야 해.
보냉팩이랑 에어셀도 다 운영 중이야.”


일이 ‘되게 만드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정공법으로 접근했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불필요한 루트였다는 걸.

시간을 줄이고 싶어 직접 담당자에게 메신저 했지만,
이 회사에서는 오히려 ‘누구에게 요청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건 정답을 잘 찾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질문을 잘 던질 ‘상대’를 찾는 사람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일에서 진짜 배운 것

누가 뭘 한다고 ‘말한’ 것보다,
지금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먼저 확인하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만큼,
어디까지 내가 책임질 일이고 누구의 몫인지 경계를 짓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트업에서 일의 복잡성은 프로세스의 불명확함에서 온다.
하나를 하려면 셋을 묻고, 넷을 확인해야 하는 구조.


이 회사에서의 첫 제품 출시 후 내가 알게 된 건 하나였다.
포장 방식보다 더 중요한 건,
조직 안에서 ‘일이 되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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