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실사를 마케팅에서?

이번에도 이유 모른 채 끌려간 공장

by 감정 쓰는 직장인

팀장의 퇴사와 어정쩡해진 자리

팀장의 공석으로, 나는 팀 이동이 결정되었다.
채용 공고에서 본 것처럼, 신규 카테고리를 기획하고자 이 회사에 입사했는데
이제 와선 포지션이 애매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간 함께 일했던 상사를 세어보니 벌써 열 번째 새로운 팀장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파도가 칠 땐 피하려 하기보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다시 한번 적응해 보자.'


느닷없이 떨어진 재고 실사 통보

그렇게 천천히 변화에 익숙해지던 중,
당분간 현장 지원은 없을 줄 알았던 예상이 빗나갔다.
재고 실사 일정이 잡혔다.

더 이상했던 건,
재무팀도 물류팀도 아닌 마케팅팀이 간다는 사실.

“왜 우리가 가죠?”
누군가 묻자 돌아온 답은 심플 그 자체였다.

“대표님이 가신대요.”

대표가 가니 직원도 간다.
납득은 안 됐지만 더 묻지 않았다.
마케팅팀에서는 이번이 창립 이후, 처음 가는 재고 실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공장의 아침은 어지러웠다

출발 당일, 아침 5시 40분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공장에 도착하자, 누가 어디를 맡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같이 온다던 대표도 없었다.
2주 전부터 메일을 주고받으며 구역을 나눴던 계획이 무의미한 순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계획은 왜 세운 걸까.'

결국 나는 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천막 안에서 종이 패키지를 세는 구역에 배정되었다.
사전 안내대로라면 냉동고에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두툼한 겨울 옷을 챙겨 갔지만,
그건 결국 그냥 짐이 되었다.


점심시간, 또 다른 충격은 그때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막걸리와 소주를 시켰고,
업무 시간인데 마치 저녁 회식처럼 잔을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 현장 팀장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저는 면접 볼 때 꼭 물어봐요. 술 좀 하세요?
안 마신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탈락시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밥만 씹었다.
내가 예민한 걸까.
아니면 이 사회가 술에 지나치게 관대한 걸까.


아무 목적도 결과도 없었던 하루

꼬박 하루를 다 보냈지만
이 실사가 왜 필요했는지, 어떤 목적과 성과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 효율을 바란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내가 꽤 순진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이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비효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를,
직접 보고 배우고 있다는 것.

언젠가 그 어느 형태로든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면,
이 모든 경험은 값진 참고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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