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을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

기대했던 상사와의 한 달, 그리고 내가 바꾼 일하는 방식

by 감정 쓰는 직장인

이직한 지 한 달도 안 돼, 팀장이 퇴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처음엔 열정뿐이었다.

연봉 협상도 기대 이상으로 잘 됐고, 맡은 일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엔 오래 다닐 수 있겠다’는 확신까지 있었다.


팀장은 첫 입사일엔 내게 말했었다.

내 역량을 200%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그때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드디어 제대로 된 상사를 만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그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팀장의 업무지시엔, 맥락을 다 잘라먹은 핵심어구만 있었다.


- 음료 검토하세요. (대체 뭘?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요?)

- 업무에 참고하세요. (어떤 업무에? 앞뒤 설명을 해줘야 알죠)

- ㅁㅁ원료 우리가 활용할만한 거 찾아봐주세요 (어느 제품군에 활용할 건데요?)


나는 처음엔 질문을 통해 맥락을 유추했고,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이걸 하라는 말씀이신 거죠?”라고 확인했지만,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나중엔 눈치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말과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는 일도 반복됐다.

상사나 다른 팀 앞에서는 “우리 팀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응, 그건 일단 속으로만 가지고 있어. 우리는 이미 출시 계획해 둔 게 있어.”라며 묵살했다.


대표가 직접 지시한 프로젝트를 맡겼으면서도,
동시에 잡다한 업무를 수시로 던져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틀에 갇히지 않은 획기적인 신제품을 기획하라고 해서,
아이디어를 가져갔더니 이건 또 너무 중구난방이라며
“가이드를 줬어야 했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은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회사의 내부 시스템이나 규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알려준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면,
대부분 다시 해야 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는 마음을 바꿨다.
‘팀장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자.’

그 이후로는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내가 이해될 때까지 묻고,
관련 부서 실무자에게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상사의 말은 지침이 아니라, 참고사항일 수 있다.’
그를 겪으며 얻게 된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은 내게 말했다.
“집안 사정이 생겨서, 다음 주에 퇴사하게 됐어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보다는,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내게 아주 중요한 기준 하나를 남겼다.

앞으로 어떤 상사를 만나든 기준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어야 한다.
모호한 지시 앞에서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내가 납득해야 움직인다는 원칙,
그것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고 지키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비용 처리 하나에 다섯 번 의문이 든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