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에서 벗어난 순간, 자기 관리의 즐거움이 시작됐다
어릴 때 나는 늘 언니와 비교당했다.
“언니는 참 예쁜데, 너는….”
“둘 중에 누가 더 예쁘니?”라는 농담 같은 말들이 내겐 상처였다.
언니는 기준이었고, 나는 늘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존재였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열등감은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더 예뻐지고 싶다는 목표의식을 심어주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예쁜 사람에게 더 친절해지는 어른들을 보며,
외모에 따른 차별 대우를 본능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뒤 나는 변화를 택했다.
쌍꺼풀 수술과 치아 교정으로 첫걸음을 뗐고,
20대 후반에는 오랜 로망이었던 1:1 PT 수업을 꽤 오래 받았다.
꾸준한 운동과 피부관리, 절주와 금연도 습관이 되었다.
메이크업도 전문가에게 배워 나답게 꾸미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이제는 “네가 더 예쁜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다.
한때 나를 가장 괴롭히던 비교에서 자유로워졌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자기 관리는 건강한 자존감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여전히 열등감이 그 원천인 걸까?
자기 관리를 구분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 건강한 자기 관리
: 과정에서 즐겁고, 성취와 만족이 남는다. “오늘은 나를 더 잘 챙겼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 건강하지 않은 자기 관리
: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멈추면 불안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더 해야 해”라는 압박이 따른다.
열등감에서 출발한 관리라도 지금 내가 즐기고 있다면, 그건 자존감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자존감에서 출발했더라도 집착으로 변하면 불안한 관리가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느냐, 아니면 소모되고 있느냐이다.
돌이켜보면, 자기 관리를 건강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하는 습관을 버린 것이었다.
꼭 언니가 아니더라도, 반마다 한 명쯤 있던 타고난 미인들을 보며
늘 “나는 저들과 다르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게 현실 직시에서 비롯된 건지, 무기력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덕분에 얼굴 전체를 바꾸는 극단적인 성형을 원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노력 정도로도 충분히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나의 지향점은 단순히 ‘예쁜 얼굴’이 아니라, 건강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잘 보이고 싶은 대상 앞에서는 더 신경 쓰고,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를 갉아먹거나, 언니와 비교당하던 시절처럼 나를 작게 만들진 않는다.
이제는 나를 가꾸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
운동할 때는 상쾌함과 뿌듯함을 느끼고,
피부관리를 하며 ‘내가 나를 돌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얻는다.
열등감이 나를 출발선에 세웠지만 지금은 즐거움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제 나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