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를 당연히 요구 받았던 계약직의 현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처음 계약직으로 일했던 때의 월 실수령액은 147만 원이었다.
입사 후 2주쯤 지났을까, 특이한 점을 인지했다.
계약직 직원들이 매일같이 밤 9시 10시까지 야근을 하는데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초과근무 기록은 남았지만 수당 지급 요청 권한은 애초에 계약직에겐 없었다.
인사총무 담당자가 대놓고 말했다.
“계약직들은 수당 요청 올리지 마세요.”
나는 ‘열심히 하면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겠지’라는 순진한 마음으로 거의 매일 야근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분노가 쌓였다.
일부 정규직은 저녁을 먹으러 한참 자리를 비운 뒤 복귀해, 초과근무 기록만 남기고 퇴근하곤 했다.
누군가는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며 열정페이를 감수하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그 제도를 악용해 이익을 챙겼다. 불공평했다.
1년가량 버티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해 퇴사하기로 했다.
퇴사 전, 벼르고 있던 일을 실행했다.
그간 야근 기록과 지급되지 않은 수당 내역을 모두 캡처해 노동청에 신고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했지만, 당시 나는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신고 사실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회사에 알려졌다.
게다가 단순 민원이 아니라 회사 대표 고발 건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이후 과장, 팀장, 본부장까지 줄줄이 나를 불러내어 말했다.
“너네 퇴직금 줘야 하기에, 예산 부족해서 수당을 못 준 거다.”
“업계 좁은 거 알잖아. 괜히 이름 오르내리면 너만 불편하다.”
나는 반박했다.
“퇴직금은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초과근무를 시켰다면 예산을 편성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퇴사 이후에도 전화가 이어졌다.
“취하하는 게 낫지 않겠냐”, “이 바닥 좁다”는 말들이었다.
내 커리어에 악영향이 올까 두려웠다. 결국 나는 신고를 취하했다.
그때는 초과근무수당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이후 소식을 들었다.
내가 몸담았던 부서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무제한 야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미리 예산을 확보해 그 시간만큼 야근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한 개인의 목소리가 작더라도, 문제시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내가 얻은 건 돈보다 감각이었다.
부당한 일을 마주했을 때 침묵하는 게 미덕이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는 감각.
그 경험 이후 나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최소한 '불합리함을 그냥 넘기지 않아도 된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직장 생활은 늘 쉽지 않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기준점처럼 남아 지금까지도 내 선택을 지탱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