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어 거절했을 때 얻은 깨달음
전 직장 다닐 때의 일이다. 연례 바자회 시즌이 다가왔다. 4개의 마케팅팀에서 두 명씩 나가 제품을 파는 행사였는데, 전년도에는 내가 나갔었다.
가겠다고 자원한 건 아니었다.
하필 판매할 물건으로 내 담당 제품이 걸렸고,
남들도 다 가기 싫어할 것 같아 그냥 군말 않고 갔었다.
하지만 이번 연도는 달랐다. 나보다 연차 적은 팀원도 셋이나 있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바자회 지원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팀장은 다시 나를 지목했다.
“민연 님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순간 ‘또 나야?’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작년에도 제가 나갔고, 이번엔 다른 팀원들도 많잖아요. 제가 원해서 맡은 것도 아닌데 또 나가는 건 맞지 않은 것 같아요.”
말하면서도 긴장됐지만, 팀장은 금세 “그럼 다른 사람 보내자”라고 했다. 별다른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던 게 의외였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팀장은 말을 바꿨다. 역시 내가 나가는 게 맞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1:1로 자리를 만들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그 끝에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단지 내 입장을 분명히 했을 뿐인데, 상황이 바뀌었다.
경험상, 한두 번 참다 보면 더 많은 일이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떨어졌다. ‘늘 네가 하던 거니까’라는 말로 굳어지는 순간, 주어지는 업무 로드는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경계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용기 낸 덕분에 그 악순환을 끊을 수 있었다.
물론 자기표현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의의 제기만 하고 업무 조정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했다. 그래서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다른 팀원들이 바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억울한 감정을 삼키는 대신, 스스로 납득 가는 선택을 했던 것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일은, 내가 말하지 않아서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 한 번의 ‘아니요’가 내 경계를 지킨다.
• 용기를 내면 상황은 의외로 간단히 바뀐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자기표현은 때로 두렵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더 큰 안도감이 기다리고 있다. 작은 ‘아니요’가 모여, 내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