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팀장이 남기고 간 문제
회사 일 하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책임을 뒤집어쓰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번 일도 그랬다.
현 직장에서, 이미 퇴사한 팀장과 함께 일하던 시절이었다.
신제품 표시사항을 검토하던 중, 표기된 영양성분 값이 실제 성적서와 달랐다.
'이거 그냥 내보내도 되는 걸까?' 불안이 밀려왔고,
차후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팀장은 제조원과 통화한 뒤 단호하게 말했다.
“제조원에서 준 표기값대로 가자. 그게 더 안전하다더라.”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침묵을 택했던 게, 결국 나를 곤란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몇 달 뒤, 팀장이 퇴사한 후였다.
해당 제품 해외 수출용 서류를 준비하다 문제가 터졌다.
대표까지 직접 챙기는 중요한 건이었는데, 제출 목록에 ‘영양성분 성적서’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표시사항에 적힌 값과 성적서의 값은 맞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윗선에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지?”
본부장, 팀장, 대표가 동시에 쏟아내는 지시 속에서,
나는 억울하게 피고인 자리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사무실을 벗어나 혼자 산책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불편할까.
· 처음부터 문제를 예견했는데, 결국 내가 수습할 몫으로 돌아왔다.
· 인수인계 자리에서 다 같이 들었던 얘기인데, 이제 와서 다들 기억 안 난다며 내 책임만 묻는다.
· 여러 사람이 중복 지시를 내려 정신이 산만해졌다.
· 무엇보다, 애정도 없는 제품을 내가 책임지는 상황이 서글펐다.
이 네 가지가 겹쳐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깨달은 게 있었다.
직장에서 중요한 건 모든 걸 완벽히 해내는 게 아니라, 내 책임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달라져야 하기에 나만의 룰을 정했다.
1. 기록을 남겨야 한다. 언제 어떤 문제를 제기했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
2.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마지막까지 다시 확인한다.
이전 사람이 괜찮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3. 애정 없는 프로젝트라 해도 내 자존감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퇴사한 팀장이 남기고 간 문제를 떠안아야 했던 그날,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걸 배웠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힘은 열정만이 아니라, 경계 세우기와 기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