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강요하기보다, 진심이 우러나올 때를 기다리는 연습
한때는 감사일기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과도 같다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퇴근 후 귀찮은 걸 억누르고 억지로라도 노트를 폈다.
‘큰 실수 없이 하루를 마쳐서 감사하다.’
‘오늘 먹은 밥이 맛있어서 감사하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이상한 허무감이 밀려왔다.
감사를 하고 있는데 왜 점점 더 공허해지는 걸까.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감사해야 하는 삶인가’라는 회의감이 남았다.
가식적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때의 감사일기는 감정 위에 덧칠한 긍정이었다는 걸.
속으로는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그 감정을 바라보는 대신 ‘그래도 감사해야지’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머리로는 감사하려 해도, 마음은 여전히 긴장 상태였다.
그건 진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세뇌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진짜 느끼는 건 감사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
대부분의 날은 후자였다.
실수하면 어쩌지, 무언가 일이 틀어지면 어쩌지.
그 불안이 내 하루를 지배하고 있었다.
결국 감사일기는 나를 평온하게 만들지 못했다.
감사할 일을 찾기보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불안했다.’
‘오늘은 억울했다.’
‘오늘은 아무 의욕도 없었다.’
그 문장들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첫 기록이었다.
요즘은 감사일기를 대신해,
내가 진심으로 느낀 감정을 한 줄씩 가볍게 적는다.
짜증, 불안, 질투, 허무감 같은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쓰고 나면 조금 가벼워진다.
감정을 지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허락하는 순간,
비로소 그 감정이 나를 떠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조금 더 나를 돌볼 줄 알게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비로소 ‘감사하다’는 말이 진심으로 떠오른다.
억지로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심이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돌보는 또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