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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떠난 후쿠오카 여행기

2박 3일로 리프레시하려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들

by 감정 쓰는 직장인

태어나 처음, 혼자 가는 여행지로 후쿠오카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부담 없이 2박 3일 다녀오기 좋고, 너무 멀지 않아 겁이 덜 났다.

그때는 휴직기간이었고, 몸과 마음이 잔뜩 지친 상태였다.
[그냥 쉬다 끝난 휴직]으로 남기고 싶진 않았다.
리프레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일부러 계획을 대충 세우고 갔다.
조사하고 비교하고 고르는 데 쓸 에너지가 없었다.
그냥 직접 가서 겪어보면 되겠지 싶었다.
결과적으로 몇 가지 불편한 일이 생겼다.


1) 어디를 가도 한국어가 들렸다

후쿠오카는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거리만이 아니라 분위기도.
어딜 가든 한국 여행객이 정말 많아서, 잠깐씩 '지금 내가 한국에 있나?' 싶었다.
낯선 환경에서 리셋되는 느낌을 기대했는데, 그 부분은 생각보다 약했다.


2) 숙소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평점과 후기, 가격, 사진만 보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고른 게 화근이었다.
그런데 체크인하자마자 감이 왔다.
로비에 무제한 생맥주 바가 있었고, 객실 냉장고에는 웰컴드링크로 술 9캔이 무료로 들어 있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에겐 장점이겠지만, 술을 안 마시는 내겐 딱히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하카타역과 거리가 애매해서 캐리어 끌고 이동할 때도, 지하철로 다닐 때도 은근히 번거로웠다.
여행에서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회복 컨디션을 좌우하는 요소라는 걸 그때 더 실감했다.


3) 식당 찾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공교롭게 가고 싶은 식당들이 대체로 몰 안에 위치해 있었고, 몰 안에서는 GPS가 잘 안 잡혔다.
내부 구조도 복잡한지라 길 찾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같은 층을 두 번이나 돌았고, 심지어 내가 있는 층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서 계단으로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나중엔 예약 시간보다 늦을까 봐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맛있는 걸 먹으러 왔는데, 왜 내가 지금 길 찾기 퀘스트를 하고 있지?'
그 순간 여행이 잠깐 [스트레스 과제]처럼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후회되진 않았다.

[내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한 느낌이 더 컸다.


여행으로 알게 된 나에 대한 사실 4가지

1) 예전보다 잠자리를 더 탄다

어릴 땐 어딜 가서든 잘 잤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수면 퀄리티가 낮아지니까 여행 전체가 힘들어졌다.
나에겐 여행의 시작이 [어디를 갈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잘까]였다는 걸 알게 됐다.

다음 여행엔 안대, 귀마개, 멜라토닌 같은 숙면 도구를 챙겨가야겠다.
내가 예민하다는 걸 알았으니, 그에 맞는 대비가 필요하다.


2) 체력을 과신하지 말자

둘째 날은 길거리 구경도 할 겸 오전 중에만 왕복 2시간 정도 걷는 루트를 짰다.
중간중간 빵집이나 카페에서 쉬면 되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길거리 구경이 막 재밌지도 않았고, 결국 중간에 지하철을 탔다.
나는 ‘많이 걷는 여행’이 힐링인 체질은 아닌 것 같다.


3) 나는 생각보다 소식가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하기에 후쿠오카를 고른 것도 있었다.
먹방 여행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하루가 끝나고 보니
식당에서 한 끼, 편의점 디저트로 0.5끼, 빵집 한 군데 정도면 이미 배가 불렀다.

나는 음식을 [많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맛있는 걸 제대로] 먹고 싶은 쪽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식당&카페를 많이 넣는 일정 대신, 만족도 높은 1~2개를 고르는 게 더 맞겠다.


4) 여행에서는 절약하는 쾌감보다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

이번 2박 3일은 비행기/숙박/쇼핑/식비/교통비까지 전부 합쳐 50만 원 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가능은 했다.
하지만 완전한 힐링이나 스트레스 해소까지는 어려웠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필요한 건 ‘절약 성공’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내게 숙소는 비용이 아니라 컨디션을 좌우하는 변수니,
다음 여행부터는 최소한 숙소만큼은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

전반적으로 완벽한 여행은 아니었다.

불편한 점도 있었고 예상과 다른 부분도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왜 이렇게 됐지?” “계획을 제대로 짰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덕분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됐다.

이번엔 그냥 성향을 제대로 확인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 여행을 위한 체크리스트

숙소: 역 접근성 + 조용함 + 침구/차음 우선

숙면 도구: 안대/귀마개/멜라토닌(필요시)

동선: 2시간 걷기 대신 30~40분 걷고 카페/휴식 구조

먹방: 정말 먹고 싶은 것 1~2개만

예산: 총액 최소화보다 숙소에 투자


후쿠오카는 나에게 단순한 첫 해외여행이기 전에, 지금의 나를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그 확인만으로도 2박 3일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소중한 1일 1식(식당 한정). 왼쪽부터 키스테이 와라쿠 하카타텐- 사시미정식, 다이치노 우동-붓가케 우동, 멘야 카네토라-츠케멘. 츠케멘은 내 입맛에 느끼하고 무(無) 맛에 가까웠고, 음식 온도도 애매해서 절대 다시 먹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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