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목줄이 되지 않게 하는 작은 실험
요즘 명치에 뭔가 걸린 느낌이 든다.
불면증도 다시 도졌다.
원인과 시점은 명확했다.
왜 나만 직보고를 하는지—그 의문이 머리에 박힌 이후부터였다.
며칠 전엔 몸살까지 앓았다. '좀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하고 넘기려다가도,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한다는 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커지면서, 스트레스가 다시 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최근 나는 얼떨결에 우리 팀에서 해외 수출 담당을 맡게 되었다.
현지 유통사가 먼저 “당신네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고 컨택해 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하면 되지.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표는 내게 현지 규정과 동종업계 시장현황을 전부 리서치해오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식품 기준·규격부터 표시·광고와 시장조사까지 한꺼번에 훑으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AI를 활용해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수출 업무를 해본 적도 없고, 그 나라 식품 법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현지 문화에 대한 지식과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정리한 자료를 근거로 제품을 설계한다면?
머릿속에서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내가 놓친 규정 하나 때문에 통관이 막히면?
그 손실은 누구 책임이지?
물론 최악을 가정해 본 거지만, 내 리서치에 구멍이 있다면 기획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 유관부서가 다시 고생하게 될 건 자명했다. 의문과 혼란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불안의 진짜 도화선은 따로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6개월 동안 대표에게 직접 보고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최소 일곱 번은 했다.
대표는 발표를 들을 때 질문을 촘촘하게 던지고, 작은 빈틈을 잡아낸다.
그러면 나는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제대로’의 대가는 결국 야근과 발표 전날의 불면증이었다.
더 모순적인 건, 연초에 대표가 했던 말이다.
특정 일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고 골고루 분배하겠다고.
네 일 내 일 나누는 직원과는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다.
내 역할만 점점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억울함은 금방 공포로 바뀌었다.
이게 또 내 일이 되면, 앞으로도 계속 이 패턴일 텐데.
그때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연 님한텐 뭐든 다 맡기면 잘할 것 같아.”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고 목줄처럼 느껴졌다.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또 나 자신을 몰아세울 내 모습이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반항심이 올라왔다.
이상하게도 상사들을 실망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내게 기대를 거는 순간, 내 삶의 핸들이 슬쩍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실험을 했다.
조사는 해두되, 먼저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표가 정한 데드라인이 지나도 조용히 있었다.
한 번 “보고해 달라”는 말이 나왔지만 대답만 하고, 또 가만히 있었다.
생각보다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팀장도 대표도, 아무도 나를 종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 2주가 흐르자 상황이 바뀌었다.
회사 내부에 없던 롤을 담당하는 사람이 새로 입사했다. 전략기획 담당, 그리고 수출입 담당.
내가 혼자 떠안고 있던 [리서치-정리-의사결정 보조-직보고]의 무게가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밤마다 떠안던 공포의 상당 부분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후 스텝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혼자 책임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정권자가 아닌데, 결정의 결과까지 미리 책임지고 있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회사 일에 충실한 사람이 될 필요는 있어도, 충실한 개가 될 필요는 없다.
지시를 내 책임으로 번역해 버리는 습관이 나를 망가뜨린다.
때로는 바로 달려들지 않고, 한 박자 멈추는 것만으로도 역할의 경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몸이 보내는 신호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을 받아들이는 내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패턴으로는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이제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몰아붙이는지—그 원인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