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보고를 구분하지 못하는 회의가 남기는 것

by 감정 쓰는 직장인

불편한 월요일로 시작한 한 주

월요일은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샘플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동일한 제품의 메인 원료만 바꿔, 거래처 사람이 총 3종을 가져오기로 했다.

샘플이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쯤, 대표가 주간 보고를 하자고 부른 시간은 1시 45분이었다.

아무 생각 없다가, 주간 보고 들어가기 직전에 팀장이 내게 말했다.
“샘플 보고하게, 들고 들어갈까?”
팀장의 지시니까 알겠다고 했다.

다만 달랑 샘플만 들고 가기엔 너무 무방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대표가 물을 질문—한 포당 중량, 1회 섭취량—정도는 답해야 할 것 같아,

업체가 오전에 보내준 배합비 정보를 출력해 갔다.

사실 보고 들어가기 전부터 팀원들은 대표의 상태를 걱정했다.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뭔가 보고거리가 있어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이번에 샘플을 보여준 목적은 단순했다.
형태가 이러하고, 맛이나 향이 어떻고, 간략한 컨셉만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날 회의의 의제, ‘기분’

그런데 대표의 일방적 훈계가 시작되었다.
“배합비 가져와서 너만 보는 게 보고야?”
“너네는 왜 리서치를 안 해?”
“보고 똑바로 해라.”
“타사 조사가 기본인데 4P는 어디 있어?”
“포지셔닝 맵은?”
“원료 소스는? 기전은? 경쟁사는 어떤 소구를 밀어? 가격은?”


나는 [보고 제대로 해라]는 말을 거의 같은 문장으로 다섯 번 넘게 들었다.

한 번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에게 같은 말을 다섯 번 하는 건 입력이 아니라, 일방적 감정 배설에 가깝다.

'내가 지금 화가 났다.' '너는 내 불안함을 받아줘야 한다.'

그 순간부터 회의는 업무 미팅이 아니었다.

대표는 그간 팀 전체에 품고 있던 불만도 쏟아냈다.

우리가 경쟁사 대비 비싸게 팔고 있는데 그만한 퀄리티가 받쳐주는지 모르겠다,

최근 출시 신제품들은 클레임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26년 신제품 포트폴리오는 왜 안 가져오냐.

너네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다. 쿠킹 클래스라도 다녀라.


훈계로는 시스템을 대신하지 못한다

가장 이해 안 갔던 대목은 두 가지였다.


첫째, “왜 4P랑 포지셔닝 맵을 안 가져오냐”는 말.
그게 회사의 기본 산출물이라면, 개인의 센스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누구든 같은 양식으로, 같은 수준까지 준비하게 만드는 게 조직이고 리더의 일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그런 게 없다.

대신 그날그날 대표의 기분에 따라 기본의 정의가 바뀐다.

어떤 날엔 샘플만 보여줘도 되고, 어떤 날엔 포지셔닝까지 결론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 차이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둘째, “너네는 왜 요리에 관심이 없냐”는 말.
요리에 대한 관심이 필수 역량이면, 애초에 그런 사람을 뽑았어야 한다.

아니면 회사 차원에서 교육을 연계하고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채용도, 교육도,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직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왜 너네는 이 정도도 못 하냐”고. 이건 독려가 아니라 책임 전가다.


팀장은 그 시간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팀장 말만 듣고 움직이면 내가 당한다.

대표가 불안해질 때 폭발할 방향을 팀장은 읽지 못한다.

읽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니 그날의 표적은 자연스럽게 나였다.

대표 기준으로는,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샘플만 들고 들어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났을 때 남은 건 딱 하나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가 아니라, '이 구조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후드려 맞겠구나'라는 확신.

나는 원래 디테일을 좋아하고, 패턴을 잘 읽고, 질문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 능력을 여기에선 쓰고 싶지 않다.

내 호기심과 집요함을 ‘일’에 쓰고 싶은데, 이곳에서는 모든 기준이 ‘대표의 기분’에 맞춰져 있다.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대표가 오늘 어떤 표현을 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건 정신력을 깎아먹는 일이다.


내가 정한 방어 규칙

직장 생활하다 보면 으레 일방적 공격에 가까운 언사를 감당해야 하는 날이 있다.

그때는 그냥 들어야 한다. 대신 그 일을 내 가치 판단으로 바꾸지 않는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가 아니라 “오늘은 누군가의 불안을 받아준 날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팀장의 말을 무지성으로 따르지 않고, 내 판단으로 결정해서 움직여야겠다.

그래야 이번처럼 억울한 일이 그나마 줄어들 것이다.

감정적인 리더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상 내겐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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